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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南橘

許南橘

1923. 6. 1 ~ 1945.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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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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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淸道)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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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동진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1) 1923년 6월 1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청도면(淸道面) 유호리(楡湖里, 현 청도읍 내호리)에서 태어났다. 1941년부터 동진회(東進會)에서 활동하면서 농민친목회(農民親睦會)와 소년독성회(少年獨成會) 등을 조직하였다. 경상남도 통영(統營)에서 한약방 견습생으로 지내던 중 1941년 설을 맞이하여 귀향하였다. 그리고 유호리의 이길우(李吉雨)·이형우(李亨雨)·이상도(李相道) 등 청년 10명과 함께 일본제국주의 치하에서의 현실과 시국을 논의하며 독립쟁취를 위한 항일비밀결사 동진회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동진회라는 명칭은 동쪽으로 진격하여 일제를 거꾸러트리자는 취지에서 정해진 것이다. 동진회가 조직된 후 회장으로 활동하며 청도지역 청년 항일운동을 선도하였다. 매월 정기모임을 통해 각자의 활동상황을 공유하고 각종 정보를 교환하며 조직을 공고히 하였다. 또한 독서활동 등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양하고, 독립운동 방략을 모색하였다. 1942년 초부터 농민봉기를 선도하기 위해 농민친목회를 결성하고, 조직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소년독성회를 조직하였다. 이러한 농민·청년·소년 단체를 바탕으로 일제의 전쟁동원 반대, 신사참배 거부투쟁 등을 전개하였다. 나아가 만주 등지에 조직원을 파견하여 다른 지역 독립운동가들과 협력을 추구하였다. 1943년에는 일제 침략전쟁에 직접적 타격을 가하기 위해 폭탄의거를 계획하고, 철도와 경찰관서 등의 폭파를 통해 일제의 군수품 수송을 막고 독립의지를 표출하고자 하였다. 같은 해 7월 의거에 사용할 폭탄을 확보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를 인수하기 위해 만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를 입수하고 동향을 감시하던 일제 경찰에게 대전 부근에서 붙잡혔다. 이어서 동진회에 대한 일제의 전방위적인 체포작전이 시작되어, 결국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일로 일제로부터 4개월간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부산형무소로 이감되어 옥고를 겪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1945년 1월 8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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