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錫基
崔錫基1903. 12. 13 ~ 1970. 12. 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혁신단
- · 암살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김상옥 폭탄투척 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3년 12월 13일 경기도 한성부(漢城府) 창신동(昌信洞)에서 태어났다. 1920년에는 혁신단(革新團) 기관지인 『혁신공보(革新公報)』의 인쇄·배포를 담당하였고, 1923년에는 김상옥 폭탄투척 의거를 도왔다. 1920년 5월 김동순(金東淳)·윤익중(尹益重)·김상옥(金相玉)·한우석(韓禹錫) 등이 조직한 암살단(暗殺團)을 도왔다. 암살단은 국내 항일운동가였던 김상옥과 북로군정서의 국내특파원 김동순이 서울에서 만나 친일인사의 응징과 조선총독을 비롯한 일본인 고관 등을 처단하고자 합의함에 따라 결성되었다. 또한 군자금을 모집하여 이를 길림군정서로 보내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게 하여 독립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였다. 이에 무기를 준비하고 암살단의 취의서와 경고문 등을 마련하였다. 이후 서울 창신동에 위치한 김상옥의 집에서 암살단의 취지를 듣고 취의서·경고문 등의 인쇄에 대한 조력 요청을 받아 등사기를 이용하여 약 300장을 인쇄하였다. 같은 해 8월 24일 암살단원으로 김상옥·김동순·한우석·서대순(徐大順) 등과 함께 미국 국회의원단의 내한을 계기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을 비롯한 일제 고관 암살과 중요기관 폭파 계획에 동참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이 독립을 열망하고 있다는 의사를 표시하고자 하였지만, 일제 경찰의 예비검속으로 인해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결국 거사는 실패하고 김상옥 등은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다. 이 일로 1921년 11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강도죄, 살인예비죄 등으로 징역 6월(미결구류일수 중 150일 본형 산입)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1923년에는 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도왔다. 김상옥은 일본제국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로 갈 예정인 조선총독을 처단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다시 서울에 진입하여 김한(金翰)·서대순 등과 만나 일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경계가 강화되면서 조선총독 암살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였다. 그해 1월 12일 밤 8시 10분경 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비밀문서책으로 활동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게 다시 붙잡혀 3개월간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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