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應歲
崔應歲1916. 7. 16 ~ 1976. 12. 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복군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제2차 세계대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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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16년 7월 16일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백량면(栢梁面) 삼금리(三錦里)에서 태어났다. 신의주동공립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이주하여 생업에 종사하였다. 중국에 거주하던 중 한국광복군 톈진(天津) 지구 지하공작대원 윤용호(尹龍虎)와 접선하였다. 1945년 2월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의 제3지대 본부에 도착하여 광복군에 정식 입대하고 첩보작전을 위한 훈련을 받았다. 이후 제3지대장 김학규(金學奎)의 지시에 따라 1945년 6월부터 칭다오(靑島) 지구의 지하공작대원으로 배속되어 지하연락망 구축, 일본군 정보수집 등의 활동에 종사하였으며, 뜻있는 한국인들을 탈출시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인도하였다. 1945년 7월 푸양의 지대본부로 귀환하여 부관실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중국 국민혁명군 제10전구사령부의 요청에 따라 김학규·박영준(朴英俊)·이원하(李元河) 등과 함께 안후이성 린취안(臨泉)으로 가서 일본군 무장해제 작업 및 관할 내 치안 유지를 보조하였다. 이후 카이펑(開封) 지구 한국광복군 특파단의 신샹(新鄕) 파견대 대장직을 맡아 지역 내 한국인들의 신변 보호 및 귀국 절차 원호를 담당하였다. 1946년에는 국공내전(國共內戰)으로 불안한 정세 속에서 만주 내 한국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박영준·장조민(張朝民)·배여성(裵麗星) 등과 함께 동북한교판사처(東北韓僑辦事處) 요원으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중국 내 정세가 악화됨에 따라 귀국한 뒤 대한민국 국군에 입대하였으며, 육군사관학교 8기생으로 임관하여 중령 계급으로 예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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