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允慶
崔允慶1922. 12. 20 ~ 1998. 2. 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복군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제2차 세계대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2년 12월 20일 황해도 신천군(信川郡)에서 최중호(崔重鎬)와 유중현(柳重賢)의 5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최중호는 일찍이 백범 김구(金九)와의 교분을 바탕으로 교육계몽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이른바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겪은 바 있고, 1917년 이후 중국으로 활동 거점을 옮겨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였다. 셋째 형 최윤상(崔允祥)은 김원봉(金元鳳) 휘하의 조선의용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한 이력이 있다. 유년기에 최중호가 있는 상하이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상하이에 거주하던 중 한국광복군 지하공작대원 윤창호(尹昌浩)와 접선하였다. 1945년 1월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의 제3지대 본부에 도착하여 광복군에 정식 입대하고, 첩보작전과 향후 국내 진공을 위한 훈련을 받았다. 중국어에 능통하여 제3지대장 김학규(金學奎)의 지시에 따라 전이호(全履鎬)·신조일(申朝日)·김국봉(金國峯) 등과 함께 1945년 6월부터 안후이성 안칭(安慶) 지구의 지하공작대원으로 배속되었다. 이후 안칭 시내로 잠입하여 지하연락망 구축, 일본군 정보수집 등의 활동에 종사하면서 일본군 점령지에서 상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일본군을 탈출한 한국인들을 동지로 포섭하여 임시정부로 인도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중국 국민혁명군 제10전구사령부의 요청에 따라 안칭 지구 공작대원 동지들과 함께 특파단을 구성하여 관할 지역 내에서 일본군 무장해제 작업 및 치안 유지를 보조하였다. 이후 광복군의 상하이 특파단으로 전속하여 지역 내 한국인들의 신변 보호 및 귀국 절차 원호를 담당하다가 중국 내 정세가 악화됨에 따라 귀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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