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用根
黃用根1901. 5. 7 ~ 1967. 12.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8)
관련 사건
- · 1919년 강화군 부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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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8) 1901년 5월 7일 경기도 강화군(江華郡, 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吉祥面) 선두리(船頭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개신교 신자였으며,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3월 18일 강화군 부내면(府內面)에서 펼쳐진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강화도에서는 개신교인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 소식이 전해졌다. 개신교인이었던 유봉진(劉鳳鎭)은 황도문(黃道文)에게서 만세운동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개신교인 유희철(劉熙哲)에게 강화군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자고 제안하였다. 유봉진은 3월 7일 길직리(吉稷里) 장윤백(張允伯)의 집에서 만세시위에 동조하는 인사들과 회합을 가졌다. 3월 9일 오후 유봉진은 길직리 교회에서 이진형(李鎭亨)과 황도문을 비롯해서 조종환(趙鍾桓)·황유부(黃有富) 등과 모임을 가졌고, 강화읍내 장날인 3월 18일에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15일 길상면 선두리에 사는 염성오(廉成五)는 황도성(黃道成)을 만난 자리에 강화읍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만세시위에 참여하자고 제안하였다. 염성오의 제안을 수락한 이후, 황도성은 황유부의 집에서 국권 회복 및 독립의 당위성 등의 내용의 『국민회보』 수백 장을 인쇄하였다. 3월 17일 개신교인 황도성(黃道成)·유학서(劉學瑞)·황일남(黃日男)·유희철·장명순(張明淳)·조상문(曺尙文)은 장윤백의 집에 모여서 만세시위에 참여한다는 결의를 다졌다. 3월 18일 오후 2시경에 부내면 장터에서 열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여기에 만여 명의 군중이 모였고, 시위대의 일원으로 경찰에 연행된 유희철에 대한 석방을 요구하면서 경찰서로 행진하였다. 경찰서 앞에서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밤 11시가 되자 시위대와 함께 해산하였다. 이에 일제는 3월 19일 오전 8시 용산에서 군 병력 40여 명을 강화도로 파견하였다. 일제 군경은 시위를 주도하고 참여한 인사를 연행하였다. 이때 일제 군경에게 붙잡혔고,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과 소요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12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죄 혐의는 무죄로 인정되었지만,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출판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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