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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弼東

韓弼東

1888. 1. 26 ~ 1952.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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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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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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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경남 합천 삼가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9) 1888년 1월 26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가회면(佳會面) 덕촌리(德村里)에서 태어났다. 합천군 지역 만세운동 시작점이었던 삼가면(三嘉面) 읍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합천군의 만세운동도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고종 장례에 참여한 지역인들이 독립선언서를 고향에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각자 다른 경로로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합천군 상백면(上栢面)·백산면(栢山面)·가회면의 주도자들은 독자적으로 거사를 준비하다가 서로 소통하게 되면서 연합하여 삼가면의 만세시위를 일으키게 된 것이다. 윤재현(尹在鉉)과 함께 가회면 만세시위를 주도적으로 계획하였다. 상백면의 정인표(鄭演彪), 백산면의 이계엽(李啓燁) 등과 긴밀히 연계하여 3개면이 연합 시위를 모의하면서부터는 가회면의 대표로 윤재현과 함께 역할을 하였다. 삼가시장 장날인 3월 18일 오후 1시경, 시장 전면의 중앙 언덕위에서 정방직(鄭邦直)·정각규(鄭恪圭) 등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선창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정방직 등과 함께 조선독립기(朝鮮獨立旗)라고 쓴 종이로 만든 깃발을 흔들며 소리높여 만세를 불렀고, 정각규·공민호(孔敏鎬) 등과 선두에 서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 군중은 행렬을 이루어 각 면마다 사전에 마련한 큰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를 부르며 시장을 누볐다. 규모는 300~400명에 이르렀고, 삼가경찰관주재소 등을 포위하기도 하였다. 만세시위가 저녁이 되어도 오히려 가열되자, 오후 5시 무렵부터는 시위 군중의 규모가 더욱 많아졌다. 낮에 시작한 만세시위가 저녁이 되어도 수그러들지 않고 오히려 본격화되는 기미를 보이자, 일제 군경들의 본격적인 진압이 시작되었다. 합천경찰서의 경찰 병력과 일본인 재향군인들까지 합세해 주재소의 경찰들과 함께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였다. 결국 오후 8시경 정방직·공민호·정각규 등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혔다. 만세시위를 주도한 인물들이 검거되면서 시위에 참여한 군중도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구금된 이후 가혹한 심문을 받았고, 만세시위 주모자로 정방직·공민호·정각규와 함께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3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한 결과, 같은 해 5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로 감형되었다. 이에 다시 상고하였으나,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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