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昌善
韓昌善1897. 1. 12 ~ 1949. 6.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채응언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7년 1월 12일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추을미면(秋乙美面) 이천리(梨川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사립 숭실학교(崇實學校)에 재학하면서 대동군 추을미면 이천리 일대의 학교 교사(敎師)로도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수백 명의 의병을 지휘하며 항일활동을 전개한 채응언(蔡應彦) 의병부대에 참여해 활동하다가 붙잡혔으나, 당시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3개월 정도만에 석방되기도 하였다. 1919년 3월 1일 평양에서 만세시위는 천도교(天道敎)는 물론 기독교계의 감리교(監理敎)와 장로교(長老敎)계가 모두 참여하여 동시에 실행되었다. 이날의 시위에서 장로교는 장대현교회(章臺峴敎會), 감리교는 남산현교회(南山峴敎會), 천도교는 설암리 천도교구당(天道敎區堂)에서 독립선언서를 읽고 각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하였으며, 곧 남문 거리의 평양경찰서(平壤警察署) 앞에서 합류하였다. 이어 도청(道廳), 재판소(裁判所)는 물론 평양부청(平壤府廳), 평양형무소(平壤刑務所) 등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세를 불렀다. 이어 3월 2일부터는 일제 군경(軍警)의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3월 2일부터 9일에 이르는 기간 동안 평양 시내 곳곳에서는 산발적인 시위가 계속되었고, 수시로 격문(檄文)과 선언문(宣言文), 『독립신문(獨立新聞)』 등이 살포되었다. 숭실학교 동문 이보식(李輔植)이 발간하는 독립신문을 인쇄, 배포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탐문(探聞)되어 붙잡혔다. 재판에서 불온 문서를 인쇄, 배포한 이유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어 1919년 7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그해 9월 20일 고등법원에서 법령적용의 오류를 적용해 소위 보안법 제7조 위반은 취소판결하고 이른바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재차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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