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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允成

韓允成

1884. 5. 1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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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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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양(襄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양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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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4)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4) 1884년 5월 11일 강원도 양양군(襄陽郡) 현북면(縣北面) 대치리(大峙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9일 현북면 기사문리(其士門里)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만세운동은 유학자와 기독교인, 마을 구장(區長)들이 힘을 모아 일으킨 만세운동이었다. 특히 주민들을 동원하는 데 구장들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1919년 당시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양군에서도 연일 만세시위가 펼쳐지고 있을 때, 마을 구장 김종성(金鐘聲)이 찾아와 시위계획을 알리고 동참을 권유하자 함께하기로 하고, 김종성·황선주(黃璇柱)와 함께 주민들을 동원하였다. 4월 9일 아침, 김종성에게 받은 태극기를 품고 약속 장소인 하광정리(下光丁里)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면사무소에는 1,000명에 가까운 현북면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주민들이 모두 모이자 선두에서 구장들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앞장섰고, 뒤에서 대치리 주민들을 이끌고 양양 읍내 장터로 나아갔다. 장터로 향하는 중 일제가 양양 읍내에 병력을 증강하고 있다는 소식에 시위대는 계획을 바꾸어 경찰주재소가 있는 기사문리로 이동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에서 1(km) 정도 떨어진 거리를 행진하면서 태극기를 흔들며 소리 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주재소 앞에 이르자 미리 정보를 입수한 일제 경찰이 강릉에서 온 지원부대까지 배치하고 주재소 옆 개울 언덕에서 총을 겨누며 대기하고 있었다. 시위대와 함께 일제 경찰의 저지를 뿌리치고 주재소로 가려고 하자, 무차별적인 총격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임병익(林秉翼)·이학봉(李學奉)·홍필삼(洪必三) 등 9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11월 1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고, 1920년 3월 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다시 징역 6월(미결구류일수 중 180일 본형 산입)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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