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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련

金基鍊

1925. 9. 10 ~ 2017.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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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기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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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개성(開城)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개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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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관련 사건

  • · 강제공출 반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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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7) 1925년 9월 10일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남면(南面) 군은리(軍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상금기련(常金基練)이다. 1938년 5월 개성공립상업학교에 입학하여 1942년 12월 졸업하였다. 1943년 3월 서울의 덕수국민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1944년 5월 12일 서울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京城拓殖經濟專門學校, 보성전문학교 상과) 경제과에 입학하였다.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4년 12월, 겨울방학을 맞아 귀향하였을 때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일제 당국의 부당한 강제 공출에 맞서 항거하였다. 1944년 12월 20일 ‘추곡(秋穀) 공출 성적 불량’을 이유로 갑자기 청년단(靑年團) 단원들이 마을에 들이닥쳐 가택 수색을 벌이자, 분개한 마을 주민들과 함께 당국의 행태에 맞서 항거하였다. 청년단장에게 “수색의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공출 성적 불량의 근거는 무엇인가? 가택 수색에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수색은 서로 불신을 전제로 한다” 등의 질문으로 따져 물었다. 이 사건으로 다음 날인 1944년 12월 21일 개성경찰서로 연행되었고, 3개월여 동안 구금되어 취조를 받았다. 1945년 3월 22일 경성지방법원 개성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및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에 장기 2년 형을 선고받았다. 1945년 3월 김천소년형무소로 송치되어 옥고를 겪다가 1945년 8월 18일 가출옥(假出獄)으로 풀려났다. 이로 인해 1945년 2월 10일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 학칙에 따라 ‘장기 무단결석’으로 제적되었다. 8·15 광복 이후인 1945년 10월 15일 보성전문학교 경상과(經商科) 2학년에 재입학하여 1950년 5월에 졸업하였다. 1952년 이래 줄곧 교직에 종사하다가 1991년 2월 정년 퇴임하였다. 동국대학교 사대부속중학교에 재직하던 1984년 9월 교육공로상을 수상하였으며, 퇴임할 때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독립유공자로 포상받기 직전인 2017년 7월 31일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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