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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렬

金公烈

1894. 9. 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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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공렬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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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牙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아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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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내집당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7)

관련 사건

  • · 내집당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7) 1894년 9월 6일 충청남도 아산군(牙山郡, 현 아산시) 송악면(松岳面) 역촌리(驛村里)에서 태어났다. 1924년 1월 서울 장교정(長橋町) 공연규(孔兗圭)의 집에서 이정섭(李禎燮)·고영택(高永澤)·김시홍(金始弘)·김익배(金益培)·박영진(朴英鎭) 등과 모여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격문 배포, 관공서 폭파 등에 대해 협의하였다. 이를 수행하는 조직으로서 ‘한국인으로서의 사상에 기초하여 한국 독립운동을 전개함’을 목표로 비밀결사 내집당(內集黨)을 결성하여 당원 명부와 규칙서 등을 마련하였다. 내집당은 첫째로 국내 각지의 부호들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보내고, 둘째로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문서를 작성 배포하며, 셋째로 임시정부의 명을 받아 일제의 관공서를 폭파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당장(黨長) 이정섭, 부당장 김시홍 아래 각 부서를 정하고 조직체계를 갖추었는데, 이때 외무부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 외에 내무부장은 고영택, 서기는 김익배, 회계는 공연규, 고문은 박영진이 맡았다. 내집당의 외무부장으로서 국내 재산가의 소재, 경찰관의 행동 및 당원의 행동 등에 관해 상세히 조사하여 당장 이정섭 등에게 보고하였다. 내집당의 자금 마련을 위해 1924년 4월 중국 다롄(大連)으로 가서 자신의 처를 요정 여랑옥(女郞屋)에 취업시키려 하였으나, 처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7월경 돌아왔다. 한편, 내집당에서는 충남 천안군 등지를 중심으로 유신상조조합(有信相助組合)이라는 금융기관과 유사한 조합을 설립하였다. 조합원 개인이 10~30전 정도씩 출자하는 방식으로 운동 자금을 마련하기로 하고, 각지에서 조합원을 모집하였다. 1924년 5월 중순경 내집당에서는 한국인의 독립 의식을 고취하고자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권 회복에 관한 문건을 작성하여 인쇄하였다. 당원들은 관공서 폭파에 필요한 폭탄 제조법을 공부하여 시험하고, 각기 방면을 맡아 돌아다니면서 제반 설비를 진행하였다. 거사를 위해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제작한 국내외 「국외불온단체분포도(國外不穩團體分布圖)」, 「경비기관배치도(警備機關配置圖)」 등이 인쇄를 위해 동양당석판주식회사(東洋堂石版株式會社)에 넘겨질 때 중간에 이를 빼내어 활용하였다. 다방면으로 거사를 준비하던 과정에서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관공서 폭파를 실행하지는 못하였다. 1924년 8월 19일 동지들과 함께 천안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0월 1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0개월(미결구류일수 중 30일 본형 산입) 형을 선고받았다. 곧바로 10월 20일에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10월 2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를 취하하였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은 후 1925년 7월 30일 형 집행 만기로 동지 6명과 함께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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