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成烈
秋成1887. 2. 13 ~ 1970. 9.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1919년 음성군 소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87년 2월 13일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충주면(忠州面) 읍내리(邑內里)에서 태어났다. 고향 인근의 장터를 돌며 잡화상으로 생활하였다. 1919년 4월 1일 음성군(陰城郡) 소이면(蘇伊面) 한내(漢川)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음성군 소이면의 한내장터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1일 김을경(金乙卿)·권재학(權在學)·이중곤(李重坤) 등이 주도하였다. 4월 1일 김을경·권재학·이중곤 등은 오전 11시경 한내장터로 나와 수백 명의 주민들을 향해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독립운동을 함이 마땅하다고 연설한 후, 큰 목소리로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한내장터의 장날을 맞아 장사를 위해 나왔다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전개하자는 김을경 등의 호소에 크게 공감하여 2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동참하였다. 김을경 등의 지휘에 따라 시위대를 형성하고, ‘조선독립만세’를 힘껏 외치며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였다. 이후 김을경 등의 지휘에 따라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김을경과 이중곤은 면장 민병식(閔秉植)을 면사무소 앞뜰로 끌어내 시위대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게 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더 많은 주민들이 합류하여 1,000여 명이 넘는 대규모 만세시위로 발전하였다. 장터에서 만세시위 발생했다는 소식이 보고되자,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즉각 해산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대규모 시위대와 함께 이를 무시하고 김을경 등의 지휘에 따라 더욱 큰 목소리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제 경찰은 만세시위의 중심인물인 김을경과 이중곤을 붙잡아 시위대와 격리하여 만세시위를 해산시키려 하였다. 이는 시위대를 크게 자극시켰다. 연행자를 대신하여 권재학이 시위대를 지휘하였다.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이용호(李龍浩) 등과 함께 돌을 던져 유리창을 파괴하는 등 적극적으로 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였다. 시위가 격화되자, 시위대열에서 이탈하는 주민들을 향해 이교필(李敎駜)과 함께 연행된 주도자들을 탈환하자고 주민들을 설득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만세시위가 더욱 격렬해지자, 일제는 충주의 일본군수비대를 지원 병력으로 급파하여 만세시위대를 향한 무차별적인 총기 발포로 만세시위를 강제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안창렬(安彰烈)·이태수(李太壽) 등 6명이 사망하였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때 권재학·이교필·이용호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22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해 7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곧바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