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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秉倫

秋秉倫

1874. 12. 26 ~ 1951.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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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秋秉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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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원주(原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원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1919년 횡성군 횡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74년 12월 26일 강원도 원주군(原州郡) 소초면(所草面) 교항리(橋項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7일과 4월 1일 횡성군(橫城郡) 횡성면 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27일 만세시위는 천도교 대교구장(大敎區長) 최종하(崔宗河)와 봉훈(奉訓) 신재근(申在根), 천도교인 장도훈(張道勳) 등이 주도하여 서울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직접 가져와 준비하였다. 주도자들은 독립선언서를 원주군 소초면에도 배포하였는데, 이웃 마을 둔둔리(屯屯里)에 사는 강만형(姜萬馨)이 그 임무를 맡았다. 비밀리에 시위계획이 알려지고 독립선언서가 배포되자 만세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심하였다. 3월 27일 아침, 장이 서는 횡성면 장터로 향하였다. 장날이기 때문에 의심받을 일 없이 장터에 이를 수 있었다. 장터에 도착하자 상점들 대부분이 철시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천도교인들이 장터를 돌며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주도자로부터 태극기를 받았고, 군중과 함께 잡화상 한봉구(韓奉九)의 집의 문을 두드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도 하였다. 정오 무렵, 윤태환(尹泰煥)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군중 앞으로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윤태환의 선창에 300여 명의 군중과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소리 높여 불렀다. 만세 소리가 울려 퍼질 즈음 기마병들이 출동하여 주도자들을 붙잡자 귀가하였다. 4월 1일 아침, 횡성면 길목에서 천도교 청년들이 장꾼들을 만세시위 참여를 권유하고 있는 것을 보고 참여하였다. 이때 1,300여 명의 군중이 모였으며, 이전과는 다르게 천도교인들뿐만 아니라 횡성면의 청년들과 기독교 감리교인들도 나와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오후 5시경, 감리교회 지도자 정해경(鄭海璟)이 군중 앞으로 나왔다. 정해경이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군중과 한목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서 천도교 주도자들의 인도에 따라 군중과 함께 장터를 누비며 ‘만세’를 연호하였다. 어두워진 이후 군중과 헌병분견소로 향하였다. 헌병분견소에 이르렀을 때는 장터 분위기와는 다르게 삼엄한 경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분견소로 진입할 때, 일제의 무력 진압이 시작되었다. 이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20년 3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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