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得千
秋得千1895. 1. 18 ~ 1953. 9.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연기군 전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5년 1월 18일 충청남도 연기군(燕岐郡, 현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全義面) 신정리(新井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3일 연기군 전의면 전의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연기군에서 일어난 최초의 만세운동인 전의장터 만세시위는 이 지역의 유림 이수욱(李秀郁)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이수욱은 서울에서 귀향한 당일 평소의 교류를 통해 신뢰하고 있었던 추경춘(秋敬春)을 방문하여 서울에서 전개되고 있는 만세운동의 상황과 그 취지를 설명하였다. 이수욱과 추경춘은 전의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하자는 서로의 뜻이 일치함을 확인하고, 적극적으로 동지 확보에 나섰다. 이수욱과 추경춘으로부터 중요한 논의사항이 있으니 7일 밤 박성교(朴聖敎)의 집에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윤자벽(尹滋壁) 등과 함께 박성교의 집으로 가서 이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수욱에게 서울의 만세운동 상황과 취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전의면에서의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에 대한 제안을 받고, 곧바로 동의하였다. 이에 즉각적으로 만세시위에 대한 협의에 착수하여 전의 읍내의 장날인 3월 13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다음날인 8일 김병옥(金炳玉)의 집에서 열린 모임에서 새롭게 정원필(鄭元弼) 등이 동지로 결합하였다. 이후 만세운동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하여 이수욱·추경천 등의 동지들과 함께 목판을 이용하여 전의장터에서 사람들에게 배포할 태극기 약 150장을 제작하였다. 거사일인 3월 13일 오전 9시경 이수욱 등과 함께 신정리에서 읍내 시장으로 넘어가는 갈정리(葛井里) 고개로 가서 시장에 나가는 사람들에게 독립만세를 외칠 것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를 권유하여 참여하도록 부탁하였다. 또 준비한 태극기를 배포하며 이수욱이 독립운동의 취지를 연설할 때 일제히 태극기를 꺼내 들고 만세를 외치며 읍내 각처를 행진하자고 당부하였다. 이와 같이 만세시위를 위한 사전홍보를 마친 후, 12시 40분쯤 이수욱 등과 함께 전의시장으로 나갔다. 먼저 이수욱이 시장에 모여 있는 150여 명의 주민들을 향하여 조선의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고 ‘조선독립만세’를 먼저 외쳤다. 동시에 사전에 약속한대로 추경춘 등과 함께 일제히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장의 사람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공감한 많은 주민이 만세시위에 동참하자, 옷 속에 숨겨 두었던 태극기를 꺼내 들고 흔들면서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제의 조치원헌병대 전의분견소 헌병들은 만세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조치원헌병대에 협조를 요청하여 조치원철도원호대 대원 20명을 지원받아 강압적으로 만세시위를 해산시켰다. 이날 일제 헌병대에게 시위 주도자로 파악되어 이수욱·추경춘 등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그해 5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7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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