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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昌鎔

崔昌鎔

1898. 11. 27 ~ 1981.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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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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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래(東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동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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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동래군 기장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8년 11월 27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기장면(機長面) 동부리(東部里, 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만세운동 참여할 당시에 기장면의 서기였다. 1919년 4월 5일 동래군 기장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3일을 전후로 독립선언서와 독립만세시위 소식이 전해지면서 부산 및 동래에서도 본격적으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 위한 움직임이 전개되었다. 3월 12일 동래군 동래면을 시작으로 동래면 동래시장 및 구포시장 등에서 3월 중순 이래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3월 13일 마부(馬夫) 김수문(金守文)은 서재선(徐再先)에게 동래에서 입수한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서재선은 김도엽(金度燁)·권철암(權鐵巖)·구수암(具壽巖)·김수룡(金壽龍)·최기복(催基福)·이택규(李澤奎)·박공표(朴孔杓)와 함께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읽었다. 아울러 김도엽 등은 동래 기장면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이 만세시위 준비 과정 가운데 참여하였는데, 기장면사무소의 회계(會計) 보관(保管)으로 재직하던 3월 28일에 면사무소 등사판과 원지(原紙) 14장을 김도엽과 김수룡에게 비밀리에 대여해 주었다. 대여 받은 등사판과 원지로 김도엽과 김수룡은 독립선언서 400장을 인쇄하였으며, 이것은 4월 5일 오전 11시에 기장읍 장터에서 만세시위에서 사용되었다. 이후 일제 군경에 의해서 기장읍 만세시위 당시 김도엽과 김수룡에게 면사무소 등사판과 원지를 대여해 준 혐의로 붙잡혔다. 1919년 5월 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며 1919년 6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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