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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정

金桂正

1914. 1. 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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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계정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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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河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하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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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914년 1월 3일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 하동면(河東面) 읍내리(邑內里)에서 태어났다. 김계정(金癸正)으로도 썼다. 오빠인 김계영(金桂榮)·김태영(金台榮)·김두영(金斗榮)이 모두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하는 등 이와 같은 집안 분위기의 영향 아래서 성장하였다. 1930년경 진주의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一新女子高等普通學校)를 중퇴하고, 그해 가을 부산부로 가서 조선방직회사의 여공으로 근무하였다. 조선방직회사에서 일하면서 노동운동을 주도하였다. 1931년 5월 초순 경에는 고광한(高光翰)·윤달선(尹達善)·임국희(林國熙)·제영순(諸英淳)·권병길(權炳吉) 등이 주도한 ‘격문 사건’에 연루되어 부산경찰서 고등계에 체포되었다. 20여 일간 계속되는 경찰의 엄중한 취조에도 끝까지 침묵을 지키다가 결국 5월 27일 석방되었다. 이후 같은 하동 출신으로서 조선방직회사 직공으로 일하며 노동운동을 전개하던 제영순·조복금(趙福今)과 함께 경상북도 대구부로 이주·활동하였다. 1931년 7월 25일 대구에서 하동 출신의 권대형(權大衡) 등을 중심으로 한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에 참여하였다.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는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 조직으로서 대구를 중심으로 서울·인천·함흥·평양·원산·광주·대전 등지와 일본까지 전국적인 연락망을 가진 비밀결사였다. 권대형과 서인식(徐寅植) 등이 발간한 기관지 『봉화(烽火)』, 『코뮤니스트』 등의 출판물을 배포하고 전매국이나 고무공장 등에서 동지를 규합하는 활동을 하였다. 이처럼 활발히 활동하다가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관련자들이 검거될 때 경상북도경찰부 고등과에 체포되었다. 1932년 7월 11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가, 7월 21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출옥하였다. 역시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으로 체포된 오빠 김계영은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32~1933년 당시 4남매가 모두 각지에서 체포되어 옥고를 겪음으로써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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