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宗三
崔宗三1896. 10. 17 ~ 1979. 11.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전주군 전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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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6년 10월 17일 전라북도 전주군(全州郡) 이동면(伊東面) 화산리(華山里)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인이며, 연초업(煙草業)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전주군 전주면(全州面) 남문 밖 시장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전주군에서는 3월 13일 전주면 남문 밖 시장 일대에서 기독교계·천도교계가 연합하여 주도한 만세시위가 거행되었다. 이때 윤건중(尹建重)·김가전(金嘉全)·이수연(李守淵)·김종곤(金鍾坤) 등 기독교계 사람들과 함께 전주면 장날을 기하여 대규모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당시 일제는 전주 일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시내 각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그러자 기독교계 인사들과 함께 전주 시내 여러 학교 학생들의 귀향을 만류하였다. 그리고 신흥학교(新興學校)와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 학생들과 함께 신흥학교 지하실과 기타 장소에서 비밀리에 태극기와 수천 장의 독립선언서를 준비하였다. 3월 13일 정오 신흥학교·기전여학교 학생들을 포함하여 주도자들과 함께 전주 남문 밖 시장에서 숨겨온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수천 명에게 배부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시위대와 함께 전주 남문을 지나 전주제2공립보통학교와 대화정(大和町, 현 전주시 전동 일대)을 거쳐 대정정(大正町, 현 전주시 중앙동 일대) 전주우편국(全州郵便局) 앞까지 행진하였다. 하지만 일제 군경은 장날 만세시위가 일어날 것을 미리 경계하며 시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결국 평화적으로 만세시위를 펼치던 시위대는 갈고리를 휘두르는 소방조(消防組)까지 동원한 일제 경찰의 무력진압으로 해산되었다. 이후 만세시위 주도자들이 대거 붙잡혔지만, 다행히 일제 군경의 검거를 피하였다. 그해 4월 상순 경 윤건중으로부터 「일본 동포에게 고하는 글」과 『독립신문』을 전주 읍내 일대에 배포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전주면 다가정(多佳町, 현 다가동 일대)의 박문재(朴文在)와 문대근(文大根)에게 문서를 배포하였지만, 결국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6월 30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1930년 광주학생운동과 관련된 일로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37년 전주 기독교계 지도자들과 함께 신사참배를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거부하였고, 이후 일제의 요시찰인물로 감시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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