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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貞徹

崔貞徹

1853. 6. 26 ~ 1919.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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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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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天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천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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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1919년 천안군 갈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853년 6월 26일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갈전면(葛田面) 가전리(佳田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채씨(蔡氏)이며,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한 병천(竝川) 진명학교 교사 김구응(金球應)의 모친이다. 1919년 4월 1일 천안군 갈전면 아우내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갈전면의 만세운동은 유관순(柳寬順)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촌언니 유예도(柳禮道)와 3월 13일 서울에서 귀향한 유관순은 3월 16일 부친 유중권(柳重權)·숙부 유중무(柳重武)·조인원(趙仁元)·김구응·이백하(李伯夏) 등 지역인사 2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서울의 만세운동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 모임에서 아우내장터 장날인 4월 1일을 거사일로 정한 후, 지역별로 연락망을 조직하고 주민들에게 배포할 태극기를 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한편 인접한 수신면(修身面)과 성남면(城南面)에서는 고종의 장례식에 참례한 후 귀향한 이순구(李旬求)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3월 29일경 이순구는 김교선(金敎善)·홍일선(洪鎰善)과 상의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한 후, 박영학(朴永學)·한동규(韓東圭)·이백하 등을 동지로 규합하였고, 4월 1일 아우내장터의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이렇게 별도로 추진되던 2개의 만세운동 계획은 연락책이었던 김상훈(金相勳)을 통해 3월말 하나로 연결될 수 있었다. 3월 31일 밤 다음날 예정대로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다는 신호로 매봉산(梅峰山)을 중심으로 천안 길목과 수신면 산마루, 충북 진천(鎭川)의 고갯마루에서 봉화를 올렸다. 4월 1일 아침 아들 김구응과 함께 아우내장터로 향하였다. 만세시위가 예정된 오후 1시 조인원은 대나무 장대에 매단 대형 태극기를 장터 한복판에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곧바로 유중권·유중무·조병호(趙炳鎬) 등이 호응하여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따라 불렀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주민들과 함께 일제히 품속에 감추고 있던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조인원·유중권·김구응·김교선 등의 지휘에 따라 만세시위에 동참한 시위대와 함께 장터 곳곳을 행진하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곧이어 병천헌병주재소 고야마(小山) 소장 이하 5명의 일제 헌병들이 완전 무장을 하고 출동하여 시위대의 해산을 명령하였다. 이에 불응하며 시위대가 더욱 소리 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일제 헌병들은 사람들을 향해 총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김상헌(金相憲)이 현장에서 사망하자 평화롭게 만세시위를 거행하던 시위대는 격분하여 주재소 유리창에 돌을 던지며 일제 헌병의 발포에 대한 책임을 강력하게 추궁하였다. 하지만 일제 헌병이 다시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여 유관순이 부상을 입었고 유중권은 사망하였다. 그러자 유중권의 동생 유중무가 형의 시신을 업고 주재소로 쫓아가 비무장한 주민들을 살상한 일제 헌병들의 야만적 행위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하였다. 이후 만세시위는 다시 격렬해졌고, 김교선·한동규·이백하·이순구·김상철(金相喆) 등이 이끄는 100여 명의 주민들이 주재소 내부로 진입하여 유치장 벽을 부수고 구금된 사람들을 풀어주었다. 이때 시위대는 3,0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오후 4시경 천안에서 고우(甲) 대위 이하 철도엄호대 6명이 지원병력으로 도착하였고, 주재소 헌병들과 합세하여 다시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였다. 김구응은 시위대의 선두에서 일제 헌병들을 향해 맨손으로 나아가다가 총상을 입고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이어서 아들의 사망소식을 듣고 달려와 일제 헌병들에게 “내 아들이 무슨 죄냐. 내 아들 살려내라”고 절규하며 아들 시신을 안고 통곡하였다. 하지만 일제 헌병들이 휘두른 총검에 찔려 역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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