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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容門

崔容門

1898. 2. 6 ~ 1981.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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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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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報恩)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보은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1919년 보은군 수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8년 2월 6일 충청북도 보은군(報恩郡) 수한면(水汗面) 묘서리(描西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2일 송덕빈(宋德彬)·안만순(安萬淳) 등과 함께 보은군 수한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9일 이래 보은군의 여러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나라의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의 취지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있던 중, 송덕빈·안만순과 협의하여 만세운동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를 통해 나라의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고향에서의 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송덕빈·안만순과 함께 구체적으로 논의하여 4월 12일 마을 인근의 농암산(籠岩山)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계획하였다. 송덕빈 등과 함께 묘서리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의 취지와 일시 및 장소를 알리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거사일인 4월 12일 오후 8시경 60여 명의 주민들이 농암산에 집결하였다. 횃불로 주변을 밝히고, 만세운동의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결의하여 모인 주민들에게 송덕빈·안만순과 함께 다시 한 번 조선 독립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만세운동의 취지를 호소하였다. 이에 산 위에 모인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함에 횃불을 치켜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밤늦도록 전개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소식을 뒤늦게 접한 일제 경찰들이 묘서리로 출동하여 참여자들에 대한 조사, 색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송덕빈·안만순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20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상고하였으나, 그해 7월 1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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