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炳泰
崔炳泰1893. 4. 15 ~ 1965. 10.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9)
관련 사건
- · 1919년 전주군 전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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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9) 1893년 4월 15일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신평면(新平面) 창인리(昌仁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최병태(崔炳台)를 썼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전주군(全州郡) 전주면(全州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전주군에서는 1919년 3월 13일 대규모 만세시위가 거행되었다. 이 만세시위를 위해 기독교인의 주도로 신흥학교(新興學校)·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의 교직원·학생들이 함께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준비하였다. 이 독립선언서는 전주 천도교구실의 배상근(裵祥根)·김진옥(金振玉) 등에게 전해진 후, 교구실의 등사판을 이용해 대량으로 인쇄되었다. 그리고 3월 13일 기독교·천도교 교인들과 학생들은 전주면 읍내 남문 밖 장날을 이용해 장터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읍내 중심가인 대정정(大正町) 앞까지 행진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14일 전날의 거사로 인해 일제 경찰의 경비가 한층 삼엄해진 가운데, 오후 3시경부터 만세시위가 재개되었다. 이때 약 300여 명의 시위대과 함께 완산정(完山町) 완산교(完山橋) 부근과 서정(曙町) 전주교(全州橋) 일대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전개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전날 체포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와 함께 본정(本町)에 위치한 경찰관파출소와 전주우편국 등으로 이동하며 격렬하게 만세시위를 펼쳤다. 하지만 만세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6월 24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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