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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德用

崔德用

1899. 3. 27 ~ 196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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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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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永同)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영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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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1919년 영동군 이원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2) 1899년 3월 27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심천면(深川面) 장동리(獐洞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촉발한 만세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전파되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충북 영동군에서는 3월 15일 무렵 옥천군 이남면(伊南面) 수묵리(水墨里)에 위치한 육창문(陸昌文)의 집에서 육창주(陸昌柱)와 허상기(許相基) 등이 이원시장 장날인 3월 27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26일 육창주는 자택에서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 3장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시위 당일 이원시장으로 가다가 주막에 있던 사람들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오후 1시경 이원시장에서 육창주와 허상기는 태극기를 흔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육창주와 허상기의 주도로 시작한 만세시위에 찬동하여 그 자리에 있던 김용이(金龍伊)·조이남(趙伊南)·이호영(李湖榮)·공재익(孔在翊) 등과 함께 시장 일대를 행진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그 과정에서 시장에 모인 주민들이 시위대에 합세하면서 7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시위대가 확대되자 이원헌병주재소 헌병들과 군청 직원들은 시위대를 향해서 해산을 명령하였다. 하지만 시위대는 명령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대가 해산할 조짐을 보이지 않자 일제 헌병과 헌병보조원은 시위대가 소지하고 있던 태극기를 압수하였으며, 시위를 주도하던 육창주·허상기를 붙잡았다. 그러자 김수원을 비롯한 시위대 일부는 주재소로 가서 연행한 육창주와 허상기의 석방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시위가 과열되면서 헌병대는 시위대를 향해서 무차별 발포하였다. 그로 인해 시위대 1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헌병대는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하였으며 시위를 주도한 김용이와 허량 등을 연행하였다. 오후 3시 무렵 일제의 무차별 발포로 사망한 시위 참여자 형 이일만이 동생의 시신을 주재소로 운구하면서 일제 헌병에게 항의하였다. 이어서 다시 집결한 시위대는 몽둥이를 휘두르고 돌을 던지면서 주재소를 공격하였다. 시위대는 커다란 돌로 유치장의 유리를 깨뜨렸으며 유치장에 갇혀있었던 육창주·허상기·김용이·허량을 탈출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육창주 등은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주재소의 각종 집기를 부수었다. 주재소에서의 만세시위는 오후 5시 30분 무렵까지 지속되었으며, 시위대의 공격으로 헌병대 10명도 부상을 입었다. 시위대에 위협을 느낀 일제는 보병 80연대 소속 5명 등 일본군을 현장에 출동시켰으며, 대전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 21명도 추가로 시위 현장에 투입하였다. 시위 현장에 도착한 일제 군경은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하였으며, 그로 인해 오후 6시 30분경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제 군경은 시위에 참여한 25명을 붙잡았다. 3월 27일 만세시위 당시 일제 헌병대의 호출로 주재소로 갔지만 다음 달 훈방조치 되었다가, 4월 21일 다시 일제 군경에게 이원면 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2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며, 같은 해 7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일부가 취소되었지만 다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조선민족으로서 정의인도에 의해서 행동한 것은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상고하였으나, 그해 8월 2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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