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德瓘
崔德瓘1893. 8. 12 ~ 1919. 12.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2)
관련 사건
- · 1919년 김해군 김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2) 1893년 8월 12일 경상남도 김해군(金海郡) 가락면(駕洛面) 대사리(大沙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으로 만세운동 학생대표로 참가했던 배동석(裵東奭)은 고향인 김해면으로 내려와 만세시위를 도모하였다. 배동석은 임학찬(任學瓚)·배덕수(裵德秀)·송상진(宋相振) 등을 만나 김해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3월 30일 밤, 김해읍 중앙거리로 나와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로 인해 배동석과 주도인물 몇 명이 검거되었다. 3월 30일 김해읍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와 주동인물들의 검거 소식을 접한 허병과 검거를 피한 송상진은 4월 2일 김해읍 장날을 다시 거사일로 정하고 준비를 서둘렀다. 이때 김해읍 장날의 거사 계획을 듣고 최계우(崔桂禹)·조병중(曺秉重)·김석암(金石岩)·송세탁(宋世卓) 등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뜻을 같이 하였다. 이 시위를 위해 3월 31일 허병의 집에서 나무판에 태극기를 새기고, 광목으로 수십 장의 태극기를 찍어 제작하였다. 그리고 거사 전날 밤 주동인물들은 각처에 격문을 붙이고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4월 2일 김해읍 시장으로 나가서 오후 3시경 허병이 제작한 태극기를 최계우에게 전달받아 시장에 모인 군중에게 배포하였다. 최계우·김석암·송세탁·조병중·송상진 등 주도인물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고, 모여든 시위대과 함께 시장을 곳곳을 누비며 행진하였다. 약 6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연호하고 시장을 가로지르면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일제 군경은 시위대의 기세가 꺾이지 않자 일제 재향군인과 상인까지 동원하여 폭력적으로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하였다. 일제 군경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시위대는 해산되었고, 최계우·송세탁·김석암·조병중·송상진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헌병에게 붙잡혔다. 1919년 5월 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하지만 이에 불복한 검사가 항소하여 5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옥중에서 고문으로 인해 병을 얻어 10월 27일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지만, 12월 8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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