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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琪焌

崔琪焌

1896. 1. 7 ~ 1957.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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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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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靈巖)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영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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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6년 1월 7일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군서면(郡西面) 서구림리(西鳩林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0일 영암군 군서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만세시위는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영암보통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던 조극환(曺克煥)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조극환은 최한오(崔漢五) 등과 상의하여 영암면과 서구림리의 두 곳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하였다. 거사일은 영암 장날인 4월 10일로 정하였으며, 임시연락소는 서구림리의 간죽정(間竹亭)으로 하였다. 아울러 목포에서 입수한 『독립신문』은 군서면 면서기인 최민섭(崔旼燮)이 인쇄를 맡았다. 4월 6일 최민섭이 『독립신문』을 인쇄할 때 면서기인 김재홍(金在洪)·정학순(鄭鶴順), 같은 마을에 살던 박규상(朴奎相)·조병식(曺秉植)과 함께 참여하였다. 인쇄는 군서면사무소 등사기를 활용하였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문장(紋章)을 각각 50장 인쇄하였다. 만세시위 전날인 9일에는 등사기를 같은 마을의 김월봉(金月奉)의 빈집으로 운반하였다. 이곳에서 박규상·조병식과 함께 ‘피도 조선, 뼈도 조선’이라고 쓴 「조선 독립가」 100여 장을 인쇄하였다. 그리고 인쇄물을 나누어 학생들에게 배포하였다. 만세시위 당일 오전 9시, 영암장터에서의 만세시위와 함께 계획한 구림보통학교의 만세시위도 시작되었다. 우선 박규상은 비상 나팔을 불어 주민을 집결시켰다. 이어서 보통학교에 가서 교직원의 제지를 물리치고 학생을 규합하였다. 박규상 등과 함께 시위대를 구성하였고 김재홍·정학순·조병식과 더불어 군서면사무소와 구림보통학교를 오가며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시위는 당일 오후 5시까지 격렬하게 진행되었고, 선두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이끌었다. 만세시위 직후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등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그해 6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다시 받고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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