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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奇鎔

崔奇鎔

1892. 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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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崔奇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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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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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1919년 안성군 원곡면
  • · 양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외가천리(外加川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20년 당시 29세이므로 1892년생으로 추정된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2일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陽城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저녁 원곡면사무소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졌는데, 여기에 참여하였다. 이날 만세시위에 외가천리에서 인접한 마을 주민들도 합세하면서, 시위대 규모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시위대는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휘날리고 횃불을 앞세우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양성면으로 행진하였다. 원곡면 시위대의 일원으로 친동생 최창용(崔昌鎔)과 함께 양성군의 성은고개를 넘어서 양성면으로 진출하였다. 밤 9시 50분 무렵 원곡면의 시위대가 양성주재소에 도착했을 당시 양성면 주민들은 만세시위를 마치고 해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곡면 시위대가 양성면 시위대를 향하여 시위를 계속 이어가자고 제안하였고, 이에 양성면 주민들이 응하자 시위대는 2,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와 함께 양성주재소에 돌을 던지면서 만세시위에 전개하였다. 그때 최관길(崔寬吉)·최은식(崔殷植)·김중식(金重植)·김순서(金順西)·정인규(鄭寅圭)·이규완(李圭完)·오세학(吳世鶴)·고인재(高麟在)·이양섭(李陽燮) 등이 양성주재소로 들어갔다. 최관길 등은 주재소 기물을 파쇄하고 서류를 훼손시켰으며, 양성면주재소를 전소시켰다. 원곡면과 양성면 시위대는 양성우편소로 진입해서 전화기를 비롯한 각종 기물 및 서류를 파괴하고 전신주 3개를 넘어뜨림으로써 그 지역 일대의 통신을 두절시켰다. 아울러 양성면에 거주하는 일본인 상인과 대금업자들의 집을 공격하고 일부를 방화하였다. 일부 시위대는 양성면사무소로 진입해서 기물과 서류를 파괴하였다. 일제 순사들은 무력적으로 진압을 시도하였고, 이 과정에서 5명이 사망하였다. 하지만 일제 순사들은 시위대의 기세를 꺾을 수가 없었으며, 결국 탄환 부족으로 더 이상 시위대의 진입을 시도할 수 없게 되었다. 4월 2일 새벽 4시 무렵 시위대와 함께 원곡면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시위대와 함께 원곡면사무소를 공격하였다. 시위대는 원곡면사무소의 숙직실을 불태웠으며, 면사무소 집기를 훼손시키고 해산하였다. 이 같은 격렬한 만세시위 관련자를 조사·색출하기 위해 4월 3일 일제는 병력을 파견하였다. 이러한 조사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실이 밝혀져 안성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사받았고, 내란죄로 고등법원의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와 공판이 이어졌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경성지방법원으로 관할 재판소를 지정받았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사들의 사법 절차 문제 지적 법정투쟁의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죄 등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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