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學先
千學先1880. 12. 26 ~ 1957. 4.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19년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80년 12월 26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대호지면) 사성리(沙城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4일 서산군 대호지면·정미면 천의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하였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마을 주민들과 함께 개인 연장을 지참하고 조금리(調琴里)에 위치한 대호지면사무소로 갔다. 6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이자, 면장 이인정이 단상 위로 올라가 작업을 위해 나온 주민들에게 연설했는데, ‘오늘의 목적은 도로 보수가 아니라, 독립 만세 운동이니 동참해 주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 연설을 듣고 크게 공감하여 다른 주민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시위 대열을 형성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이들의 ‘조선독립만세’ 구호를 듣고 정미면의 주민들까지 참여하였고, 시위대는 1,000여 명 규모로 확대되었다. 시위대와 함께 천의시장 곳곳을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천의장터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발생하여 소수의 천의주재소의 경찰력만으로는 만세시위의 진압이 불가능하다고 연락 받은 일제 당국은 당진경찰서의 경찰력을 천의장터로 급파하였다. 만세시위를 마무리하고 주변의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있던 주민들 속에서 대형 태극기를 발견한 당진경찰서의 순사들이 빼앗는 과정에서 만세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분노하여 일제 순사들의 만행에 항의하기 위해 천의주재소로 달려갔다. 송재만의 지휘에 따라 김길성(金吉成)·김부복(金夫卜)·김장안(金長安) 등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서 주재소 습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일제 경찰을 구타하고, 돌을 던져 주재소 시설과 기물을 부수는 등 격렬한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일제 헌병수비대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10월 2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태(笞) 90(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오른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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