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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梁釗

千釗

1886. 5. 11 ~ 1964.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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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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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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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동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6년 5월 11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동후면(東後面) 노산동(老山洞)에서 태어났다. 임동면(臨東面) 중평동(中坪洞)으로 이주하여 종업원으로 생활하였다. 1919년 3월 21일 거주하고 있던 중평동의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만세운동을 처음 계획한 유연성(柳淵成)은 3월 15일 유동수(柳東洙)·유교희(柳敎熙)·박재식(朴載植) 등과 편항시장 동편 공동 타작장[인낙장(籾落場)]에 모여 시위를 결의하였다. 유연성 등 주도자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임동면 지역을 나누어 주민들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편항시장 부근을 맡은 유곡란(柳谷蘭)·박재식(朴載植)·박진선(朴晋先)은 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편항시장에서 만세시위가 있을 것을 알리고 동참을 호소하였다. 이와 같은 유곡란·박재식·박진선 등의 호소에 크게 공감하여 다른 주민들과 함께 나라의 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결의였다. 만세운동의 거사 당일인 21일, 약속한 대로 시위 현장인 편항시장으로 향하였다. 장꾼과 주민들로 붐비는 장터에는 주도자들과 더불어 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나온 주민들이 곳곳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2시경 유연성이 주도자들과 함께 장터 중앙에 나와 군중을 향하여 연설하기 시작하였다. 유연성은 군중에게 왜 만세운동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한 후에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에 주도자들이 독립만세로 화답하였고, 주민들과 함께 모두 한 목소리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 함성에 장터 곳곳에 있던 장꾼과 주민들도 호응하며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가 본격화되었다. 편항시장에서 만세시위가 발생하였다는 소식을 접한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대 앞을 가로막고 해산을 명령하였다. 그리고 유연성과 참여자 배태근(裵太根)을 붙잡아가려는 과정에서 일제 경찰이 배태근의 뺨을 때리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 광경을 목격한 시위대의 주민들이 분노하여 경찰에게 달려가자, 당황한 일제 경찰은 그 자리에서 주재소로 도주하였다. 이에 더욱 사기가 오른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연창하여 주재소로 향하였다. 유연성·배태근·이강욱(李康郁)·조학이(趙學伊) 등이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주재소로 나아갔다. 주재소에 이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500여 명의 군중이 주재소 앞에 운집하게 되었다. 이때에도 일제 경찰은 발포하며 시위대를 위협하였지만, 이것은 오히려 시위대의 분노만 더 키웠다. 시위대와 함께 돌과 몽둥이로 주재소 출입문을 부수고 들어가 주재소 벽과 창문 등을 무너뜨렸다. 주재소 안에 들어가서는 책상과 의자 등의 기물을 완전히 파괴하고 서류 등도 모두 파기하여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으며, 총기와 도검 등 주재소 안에 있던 일제 경찰의 무기들을 모두 모아 주재소 뜰에 있는 우물에 버렸다. 이후 오후 5시경 시위대와 기세를 몰아 면사무소로 행진하여 면사무소의 벽과 유리창, 가스등을 남김없이 부수었고, 사무실 안의 비품과 서류도 모아서 파기하였다. 시위대의 격렬한 저항에 주재소와 면사무소는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폐허가 되었다. 이날 밤 12시경 면사무소까지 완전히 파괴한 1,500여 명의 시위대는 새벽 3시까지 만세시위를 이어간 후에 자진 해산하였다. 일제는 다음날부터 만세운동 주도자와 참여자 검거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6월 2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8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는 1심보다 형량이 높은 징역 3년을 받아 형이 확정되면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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