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奉哲
車奉哲1897. 1. 7 ~ 1963. 3.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1919년 홍천군 홍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1897년 1월 7일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홍천면(洪川面) 신장대리(新場垈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차홍기(車弘基)이다. 기독교인이며 고물상을 운영하였다. 1919년 4월 1일 홍천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고종의 인산에 참여하기 위하여 상경하였다가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귀향하였다. 3월 말경 기독교인 서상우(徐相祐)와 천도교인 오창섭(吳昌燮)을 만나 서울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며 홍천면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과 함께 홍천면에 장이 서는 4월 1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기독교와 천도교 측에서 각각 홍천면과 북방면(北方面) 주민들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김기현(金基鉉)·김수완(金壽完)·임윤항(林潤恒)·이홍근(李洪根)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준비하였고, 기독교인들에게 거사계획을 알리며 참여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만세시위에 쓸 작은 태극기를 직접 제작하였다. 거사 하루 전날인 3월 31일 저녁에는 같은 마을의 고익진(高翼振) 집 앞 도로에서 김기현·김수완·임윤항·오창섭·송경섭(宋景燮)·차봉환(車鳳煥)·김영옥(金永玉)·최승혁(崔承赫) 등을 만나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다음날 홍천-인제 간 도로공사에 많은 주민들이 동원되는 것을 적극 이용하기로 하였다. 4월 1일 아침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신장대리에 위치한 장터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김기현·김수완 등 주도자들과 함께 장꾼과 주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이때 북방면 하화계리(下花溪里)·중화계리(中花溪里)·화동리(花洞理) 등에서 주민들이 도로공사 부역 인부로 가장하고 장터로 모였다. 오후 1시경 오창섭과 김영옥이 대형 태극기를 높이 들고 장터에 들어오자,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주민들을 이끌고 합류하였다. 오창섭·김영옥·김기현 등 주도자들과 더불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장터에 모인 장꾼과 사람들도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에 적극 호응하였다. 그러자 김옥인(金玉仁)·최흥길(崔興吉)·이종섭(李鐘燮) 등 상인들이 문을 닫고 만세시위에 합류하였다. 오창섭·김기현 등 주도자들과 함께 2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장터 곳곳을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펼쳤다. 주민들의 참여가 이어지면서 기세가 오른 시위대를 지휘하여 군청과 면사무소 앞으로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연호하였고, 홍천헌병분견소로 이동해 진입을 시도하였다. 일제 헌병들이 출동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다른 주도자 30여 명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혔다. 이후 일제는 춘천 주둔군 보병 1개 분대를 시위 현장으로 급파하기도 하였다. 이 일로 일제 헌병에게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6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조선 민족으로 정의(正義)·인도(人道)에 기초한 의사이기 때문에 범죄가 되지 않는다”며 상고하였지만, 그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0년 7월 1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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