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宅賢
陳賢1886. 7. 4 ~ 1951. 8.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합천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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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9) 1886년 7월 4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상백면(上栢面) 평지리(平地里)에서 태어났다. 합천군 지역 최대 규모의 만세시위였던 삼가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계엽(李啓燁)·김태현(金台鉉)·윤규현(尹圭鉉) 등과 함께 주도한 3월 23일 합천 삼가시장 만세시위는 3월 18일 삼가면 읍내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거의 매일처럼 합천군내 각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정점에 있는 거사였다. 합천 군내는 물론 인근 의령군(宜寧郡) 주민들까지 합세하여 13,000여 명의 대규모 군중이 집결하였다. 이렇게 많은 군중이 모일 수 있었던 것은 함께 거사를 준비한 주도자들이 군내 연고 지역을 맡아 조직적으로 군중 동원을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삼가시장 장날인 3월 23일 10,000명이 넘는 엄청난 군중이 모여 만세시위를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물리력을 동반하여 격렬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먼저 일본 제국주의의 국권 강탈과 식민지적 수탈을 성토하고 그들이 물러날 것을 촉구하는 군중집회가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읍내 객사(客舍) 바깥채인 정금당(淨襟堂)이 집회 연단이 되었다. 연단에는 김전의(金典醫)·정방철(鄭邦哲)·김달희(金達熙)·임종봉(林鍾鳳) 등 시위 주도자들이 차례로 올라와 장터에 모인 사람들에게 연설을 하였다. 이에 대해 운집한 시위대와 함께 열렬히 호응하고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연설하던 임종봉이 돌연 일제 군경이 쏜 총탄에 대퇴부를 맞고 쓰러지면서 시위 양상은 돌변하였다. 목전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시위대의 분노가 폭발하였다. 이때 선두에서 성난 시위대를 이끌었고, 곤봉·낫·호미 등을 든 분노한 사람들과 함께 경찰관주재소, 읍내 우편소 등 식민 통치의 상징적 기관들로 독립만세를 외치며 나아갔다. 당황한 일제 군경들은 시위 진압을 위해 무차별 발포를 감행하였다. 그 결과 만세시위 현장에서 13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도 30여 명에 이르렀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적극적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붙잡혔다. 이일로 혹독한 심문을 받은 후 재판에 넘겨져 징역 6월을 받고 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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