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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寅圭

鄭寅圭

1890. 9. 20 ~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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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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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2013)

관련 사건

  • · 1919년 안성군 원곡면(元谷面)
  • · 양성면(陽城面)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3) 1890년 9월 20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외가천리(外伽川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정문오(鄭文五)와 한자를 달리한 정인규(鄭仁圭)를 썼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1일 안성군 원곡면·양성면(陽城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원곡면의 만세시위는 칠곡리(七谷里)의 이유석(李裕奭)·홍창섭(洪昌燮), 외가천리의 최은식(崔殷植)·이희룡(李熙龍)·이근수(李根洙), 내가천리(內伽川里)의 이덕순(李德順), 죽백리(竹栢里)의 이양섭(李陽燮) 등이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1일 밤 최은식 등에게서 만세시위 계획을 전달받고 참여하기로 한 후 주민들과 함께 면사무소로 향하는 칠곡리의 시위대에 합류하여 면사무소로 이동하였다. 밤 8시경 면사무소 앞에 원곡면 각 마을에서 모인 1,000여 명의 주민들이 집결하였다. 이유석·최은식·이양섭 등의 지휘를 받으며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주도자들은 면장 남길우(南吉祐)와 면직원들을 밖으로 끌어내 태극기를 주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도록 요구하였다. 시위대의 위세에 눌린 면장과 직원들이 순순히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자, 만세시위의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그러자 이유석·최은식·이양섭 등의 주도자들이 시위대를 향해 경찰관주재소·우편소 등 주요 시설이 모여 있는 양성면으로 이동해 양성면민들과 연합하여 만세시위를 지속하자고 제안하였다. 이에 적극 호응하며 다른 주민들과 함께 횃불을 밝힌 후, 면장을 앞세운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양성면으로 행진하였다. 시위대가 양성면으로 넘어가는 성은고개의 정상에 도착하자, 이유석·홍창섭·이양섭 등의 주도자들은 시위대 행진을 멈추게 한 후 휴식을 갖도록 하면서 집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이유석·홍창섭·이덕순·이근수·최은식 등이 주민들 앞으로 나와 일제 식민통치의 주요 기관과 양성 읍내 거주 일본인의 처단 등에 대해 연설하였다. 이러한 내용에 공감하여 다른 주민들과 함께 돌멩이와 몽둥이 등을 준비한 후, 큰 목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다시 양성면으로 행진하였다. 한편 양성면에서도 이날 밤 9시경부터 수백 명의 주민들이 동항리(東恒里)에 위치한 양성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고 있었다. 밤 9시 50분경 원곡면의 시위대가 성은고개를 넘어 동항리로 들어왔고, 만세시위를 종료하고 해산하려던 양성면 시위대에게 합류할 것을 권유하였다. 밤 10시경 약 2,000명의 규모로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가서 이유석·홍창섭·최은식 등의 지휘에 따라 공격을 시작하였다. 이때 최은식·김원순(金元順)·이국상(李國相)·이유만(李裕萬) 등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서 돌과 몽둥이로 유리창·벽·기물·집기 등을 부수고, 이유석·최은식 등과 더불어 사무실·순사 기숙사·각종 문서 등을 불태웠다. 이어서 시위대와 함께 양성우편소로 이동한 후 이유만(李裕萬) 등과 함께 우편소 안으로 들어가 집기를 파손하고, 다른 사람들이 꺼내온 집기와 기물 등에 불을 붙여 모두 소각하였다. 또한 일본상인 도자토(外里與手)와 고리대금업자 다카(隆秀知)의 상점과 집 등을 공격하였고, 기물·가구들을 밖으로 꺼내 소각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다음날인 4월 2일 새벽까지 만세시위를 지속한 후, 다시 원곡면으로 돌아와 면사무소의 담장을 파괴하고 건물을 불태웠다. 일제는 4월 3일 한국 주둔 일본군 제79연대 소속 30여 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만세시위 참여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와 색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내란죄 적용 문제를 두고 오랜 조사와 공판이 이어졌다.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에서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경성지방법원으로 관할 재판소를 지정받았다. 같은 해 8월 1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변호사들의 사법 절차 문제 지적 법정투쟁의 결과 공소 불수리 처분을 받았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죄, 소요죄 등으로 징역 7년(미결구류일수 중 5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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