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順石
趙順石1912. 1. 17 ~ 1993. 1. 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전남운동협의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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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8) 1912년 1월 17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병영면(兵營面) 성남리(城南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조성원(趙成源)이다. 1931년 전남운동협의회에서 활동하였다. 1928년 3월 병영공립보통학교(兵營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한 후 1933년 경까지 자택에서 조끼를 제조·판매하였고, 같은 마을 하동린(河東麟)의 집에서 재봉 직공으로도 일하였다. 1931년 경부터 친구 윤주응(尹柱應) 등의 지도와 교양 교육을 받고, 공산주의 문헌을 읽으면서 공산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31년 8월경 문맹 퇴치와 함께 사회주의사상을 교육하던 전남운동협의회 반제동맹(全南運動協議會 反帝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광주지방법원 검사국에서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다. 풀려난 후 전남운동협의회와 관계를 이어가면서 1932년 10월 중순경 병영면 성동리(城東里) 강금례(姜錦禮)의 집에서 동지 4명과 회합하였다. 그리고 공산주의 혁명운동의 성공을 위해 마르크스주의 이론 연구와 의식 강화를 도모하고, 무산대중을 실천적으로 지도·훈련하여 혁명으로 이끌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후 매월 2~3회씩 병영공립보통학교 등에서 회합하며 각자의 연구 결과를 비판·토의하기로 하였다. 1933년 3월 초순 오후 2시경 동지 김감년(金甘年)·이형모(李炯模) 등과 만나, 공산주의 혁명은 실천이 중요하며 무산대중을 지도·훈련하여 혁명을 일으켜 계급해방을 도모하도록 이를 지도할 수 있는 단체를 설립하기로 협의하였다. 1933년 여름 강진군 병영주재소 방화사건과 관련하여 취조가 진행되던 중 전남운동협의회의 사상운동과 활동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일로 1934년 2월 대검거로 전라남도에서 총 558명이 체포될 때 함께 붙잡혔다. 1936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545일 본형에 산입)을 받았다.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1937년 1월 7일 형 집행 만기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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