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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孝龍

鄭孝

1894. 1. 19 ~ 1934.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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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孝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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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和順)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화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독립신문사
  • · 광주소작인연합회
  • · 남선노농동맹
  • · 광주노동공제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894년 1월 19일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능주면(綾州面) 관영리(貫永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정인모(鄭仁模)·정남근(鄭南槿)이다. 1920년 3월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독립신문사의 직공으로 일하였고, 같은 해 4월부터 9월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부 서기로 근무하였다. 1920년 9월 차리석(車利錫)의 소개로 ‘전남 방면 선전원’이라는 사령서와 용어 암호표·선전비 및 여비를 수령하고 국내에 파견되었다. 서울에서 신동호(申東浩)와 전국 각 도 및 군에 선전부 및 선전대를 조직하여 임시정부와 맥을 통하여 독립운동을 선전할 것을 협의하였다. 11월에는 신동호를 통해 전남 광주군(光州郡) 광주면(光州面)의 이기호(李基浩)·김희걸(金熙杰), 화순군의 최춘열(崔春烈) 등과 선전대 조직을 협의하던 중, 같은 달 17일 경기도 제3부에 붙잡혔다. 1921년 6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 소작·노동운동에 투신하여 1923년 6월 광주소작인회 연합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구 소작인 간의 갈등을 중재하였고, 같은 해 11월에는 광주군수가 소수의 지주 입장만을 대변하였다고 성토하기 위한 탄핵연설회에서 연사로 참여하였다. 1924년 2월에는 소작인들의 소작지 개척에 필요한 사항을 선전하고 소작 농민의 현재 및 장래를 논의하는 강연회를 주관하였다. 이어서 2월 17일에는 순천군(順天郡) 서면(西面)에서 ‘농민아 일어나거라’라는 주제로 강연하였으며, 순천군의 소작문제에 개입하여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1924년 4월에는 남선노농동맹(南鮮勞農同盟) 창립총회 전형위원으로 선임되었고, 같은 시기 광주노동공제회 교무부 위원 등으로 활동하면서 소작인의 권리 보호와 갈등 중재 등을 위해 진력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5년 3월 2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과 공갈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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