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泳祐
趙泳祐1911. 1. 23 ~ 1933.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반제동맹(고토지구)
- · 일본공산청년동맹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1911년 1월 23일 황해도 해주군(海州郡) 해주면(海州面) 동영리(東榮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박용진(朴龍鎭)이다. 해주고등보통학교 2학년 재학 중 학생운동을 주도하여 학교당국으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다. 퇴학당한 이후에도 동지인 한장옥(韓長玉)·원봉수(元鳳洙)·최제근(崔濟根) 등과 함께 광주학생사건에 부응해 활동하는 등 사회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 10월 1일 일제의 이른바 시정기념일(施政紀念日)을 전후하여 황해도 해주 내에 ML씨라는 이름으로 일제의 식민통치를 반대하는 격문을 붙였다. 일제 경찰로부터 이 격문을 붙인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또한 발생한 강도사건을 수사 중 가택수색 과정에서 하여 격문 여러 장과 등사판 등이 발견되었다. 이 일로 그해 11월 3일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31년 5월 26일 집행유예 5년과 벌금 20원을 받았다. 풀려난 후 일본으로 건너가 항일운동에 종사하면서 반제동맹(反帝同盟) 고토지구(江東地區) 서기로 활동하였다. 일본반제동맹은 1929년 전국농민조합,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전일본무산자예술동맹, 조선노동총동맹, 대만농민조합을 구성단체로 하여 일본제국주의와 전쟁반대를 위해 대중활동을 전개한 단체이다. 특히 재일조선인들은 ‘식민지 독립 지지’를 과제로 내세우며 도쿄(東京)와 오사카(大阪)를 중심으로 조선인 600여 명이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일본공산청년동맹에도 가입하여 활동하였는데 이는 1923년 일본공산당의 산하조직으로 결성된 단체이다. 일본에서 항일운동을 하고 있던 가운데 1933년 10월 중순 일제 특고 스파이에게 쫓겨 자전거로 도주하던 중 도쿄의 간다가와(神田川)에 추락하였다. 이때 쫓고 있던 특고 스파이들은 자전거에 실렸던 산별신문(産別新聞)만 건지고 방치한 채 도주하였다. 결국 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이후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고토지구 및 반제동맹 고토지구가 중심이 되어 각 지구 노동자장(勞動者葬) 반제장대책위원회(反帝葬對策委員會)를 조직하여 그해 11월 7일 장례식을 반제장(反帝葬)으로 거행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방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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