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武駿
趙武駿1918. 4. 28 ~ 1989.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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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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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18년 4월 28일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 옥종면(玉宗面) 월횡리(月橫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함안(咸安), 호는 범만(凡晩)이다. 경남 진주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39년 2월 진주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7년 학업에 뜻을 품고 일본으로 떠나 1939년 5월 규슈의학전문학교(九州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하였다. 규슈의학전문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던 조계순(趙桂淳) 및 한국인·중국인 유학생과 교류하며 민족의식을 키웠다. 유학생들과 여러 차례 모임을 가지며 “중·일전쟁에서 일본의 패전은 필연적이다. 이때에 독립을 달성해야 한다.”, “조선어 금지는 조선 민족의 멸망을 초래하므로 절대 반대하며 모든 방법을 강구해 조선어를 지켜야 한다”, “조선 민중의 우수한 민족성과 역사·문화의 긍지를 지켜야 한다”고 결의하고 함께 활동할 동지를 모집하였다. 또한 신입생 환영회·졸업생 송별회 등에 참석해 한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였다. 1941년 5월경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허인오(許仁五) 등과 함께 하숙집에 모여 조선 민중의 민족·독립의식 보존을 위해 노력하자는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우선 한글 서적 발행을 활성화시켜야 하니 각자 돈을 걷어 한글 서적을 다수 구입해 돌려 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9월 중순에는 규슈의학전문학교 한국인 학생 송별회에 참석해 재학생들에게 “우리는 다수의 조선 민중 중에서 배울 기회를 얻은 선발된 사람이라는 자각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은인인 조선 민중은 현재 입을 옷과 먹을 곡식이 없는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장래에 조선 민중을 위해 열심히 의학을 공부할 의무가 있다”는 연설을 하였다. 위와 같은 활동을 하던 중 1941년 10월 21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2년 11월 9일 후쿠오카(福岡)지방재판소에서 민족의식을 앙양하고 독립운동을 선동하였다는 이유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고를 겪고 1943년 가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수감 생활로 약해진 건강을 회복한 후 의학 공부를 계속하고자 만주 룽징의과대학(龍井醫科大學)에 편입해 1945년에 졸업하였다. 광복 후 서울대학교병원, 경남 의령보건소, 서울 국립의료원, 서울시립 남부병원에서 내과 의사로 근무하였다. 1967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자메이카 정부 초청으로 10년 동안 자메이카에서 의료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귀국 후에는 당시 경남 서부의 유일한 종합병원인 윤양병원 의무원장으로 오랫동안 근무하며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진력하였다. 1998년 유고 한시집(漢詩集) 『환향(還鄕)』이 출간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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