池甲眞
池甲眞1882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강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이강산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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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전라남도 무안부(務安府) 망운면(望雲面) 피서리(皮西里) 조산(造山)마을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909년 당시 28세이므로 1882년생으로 추정된다. 활동 당시에는 무안부 좌촌면(左村面) 죽촌리(竹村里)에 거주하였다. 1909년 이강산(李江山)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전남 함평(咸平) 출신인 이강산은 1909년 7월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같은 해 9월경까지 전남 함평과 영광(靈光)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그해 8월경 이강산 의병부대에 합류하였으며, 일제 밀정을 처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8월 29일 이강산의 지휘 아래 동료 의병 박치일(朴致一)·정인술(鄭寅述)·박장봉(朴章奉)·서성학(徐成學)·장한순(張漢順) 등과 함께 함평군 대월면(大月面)에 위치한 주막에서 나주헌병분견소 구밀파견소의 밀정으로 활동하던 이판안(李判安)·김정태(金正泰)·최치도(崔致道)·박복남(朴福男) 등을 처단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리고 양창국(梁昌國)·박병수(朴丙洙) 등과 함께 처단하기로 계획한 4명의 밀정을 모두 처단하였다. 1909년 9월 일제가 호남지역 의병들을 탄압하기 위해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으로 불리는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전개함에 따라 더 이상 의병활동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같은 해 10월 2일 임시파견 토벌대(臨時派遣 討伐隊)에 자수하였다. 이 일로 그해 12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모살죄로 종신 징역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10년 2월 28일 대구공소원에서 다시 징역 12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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