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泳善
趙泳善1879. 6. 25 ~ 1932. 5. 2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최익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중기의병(최익현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9년 6월 25일 전라남도 곡성군(谷城郡) 오곡면(梧谷面) 오지리(梧枝里)에서 태어났다. 자는 이경(而慶), 호는 배헌(拜軒)이다. 1906년 최익현(崔益鉉)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게 빼앗기자 전국적으로 다시 의병이 일어났다. 1906년 6월 4일 최익현은 최제학(崔濟學)·고석진(高石鎭) 등의 문인을 이끌고 태인군(泰仁郡)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최익현의 문인은 물론 일족인 조우식(趙愚植) 등과 함께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최익현 의병부대는 태인 읍내를 차지한 후, 정읍군(井邑郡)·순창군(淳昌郡)·곡성군 등을 차례로 점령하며 세력을 확대하였다. 같은 해 6월 11일 최익현 의병부대는 전주(全州)·남원(南原) 진위대와 대치하며 이들을 설득하고자 하였으나, 진위대는 역으로 이를 이용하여 일제히 공격을 가하였다. 관군의 공격을 받고 중군장 정시해(鄭時海) 등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의병장 최익현은 동족상잔을 피하기 위해 응전을 금지시킨 후 끝내 체포되었고 의병부대도 결국 해산하였다. 이때 피신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였고, 임병찬(林炳瓚)·고석진·김기술(金箕述)·문달환(文達煥)·양재해(梁在海)·나기덕(羅基德)·이용길(李容吉)·임현주(林顯周)·최제학·조우식·유해용(柳海瑢)과 함께 최익현의 곁을 지키다가 함께 붙잡혔다. 그래서 ‘12의사’ 중 하나로 불렸다. 1906년 6월 14일 최익현 등과 함께 전주진위대로 압송되었고,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고석진과 함께 최익현을 면담하며 서로를 위로하였다. 그해 6월 18일 서울의 일본군사령부로 이송되어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도 일제의 침략 행위를 꿋꿋하게 비판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25일 태(笞) 10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구열회⋮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