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成八
趙成八1858 ~ 1912. 2. 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석용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이석용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미면(米面) 관여산(觀如山)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09년 당시 52세이므로 1858년생으로 추정된다. 수형인명부에는 주소가 장성군(長城郡) 북일면(北一面) 당저리(堂底里)로 기재되어 있다. 이명은 조동주(趙東柱)이다. 1908년부터 이석용(李錫庸)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이석용은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으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전북 임실군(任實郡) 성수면(聖壽面) 삼봉리(三峯里)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임실·순창(淳昌)·남원(南原)·태인(泰仁)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6년 익산(益山)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 이석용 의병부대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08년 (음)12월 9일에는 무기를 휴대하고 동료 지춘경(池春敬) 등과 함께 임피군(臨陂郡) 용지산(龍池山) 후동(後洞)의 김씨 집에서 음식물을 제공받고 엽전 7냥을 징수하였다. 이후 임피·익산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변산(邊山)으로 이동하였다. 일제의 의병에 대한 탄압이 강화되자 1909년 5월에는 임피군 북일면(北一面) 중흥리(中興里, 현 군산시 성산면)로 옮겨 농민으로 위장하여 은신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25일 자택까지 찾아 온 일제 순사 카네코(金子圖次郞) 등에게 붙잡혀 군산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또한 일제 순사에게 가택수색을 당하는 과정에서 지붕에 숨겨둔 인장과 격문이 발각되었다. 이로 인해 이석용 휘하에서 의병활동을 한 사실이 밝혀지게 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09년 7월 28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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