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性穆
趙性穆1868. 11. 10 ~ 1937. 10. 2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정용기 의병부대
- · 참동계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중기의병(정용기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68년 11월 10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현 포항시) 곡강면(曲江面) 매산리(梅山里)에서 태어났다. 1906년부터 경북 영천(永川)에서 조직된 정용기(鄭鏞基)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정용기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부친 정환직(鄭煥直)이 고종으로부터 거병의 뜻이 담긴 밀지를 받자, 경북 영덕(盈德)으로 내려가 이한구(李韓久)·정순기(鄭純基)·손영각(孫永珏) 등과 함께 의병 600여 명을 규합하여 의병부대를 결성하였다. 1906년 3월 정용기 의병장의 휘하로 들어가 최세한(崔世翰)·정내의(鄭來儀)·김창수(金昌洙) 등과 함께 흥해(興海) 지역의 책임을 맡았다. 그리고 1907년까지 정용기 의병부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같은 해 9월 입암(立巖) 전투에서 의병장을 포함해 중군장 이한구·참모장 손영각·좌영장 권규섭(權奎燮) 등 주요 간부진이 모두 사망하고 의병부대가 해산되자, 재기를 도모하며 은둔하였다. 1927년에는 정용기 의병부대에 참여해 항일투쟁을 전개했던 인물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참동계(參同契)를 만들었다. 그러나 계원 중 1명이 참동계의 설립취지를 염탐한 후, 대구 도경찰부에 밀고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경주검사국으로 송치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계원(契員)들끼리 왕래한 서신과 문서를 빼앗기는 등 고초를 당하였지만, 끝내 참동계의 문서가 적발되지 않아 같은 해 10월 27일 기소중지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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