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諸春三

諸春三

1877 ~ 1908. 8. 7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諸春三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미상의병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관련 사건

  • · 양치언 의병부대
  • · 제춘삼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5)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출생시기와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기록에 따르면 1908년 당시 32세이므로 1877년생으로 추정된다. 활동 당시에는 전라북도 장수군(長水郡) 중번암면(中番岩面) 하동화동(下桐花洞)에 거주하며 생선행상(魚行商)을 하였다. 1908년 양치언(梁致彦) 의병부대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이후 의병부대를 이끌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고종)를 강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에 분노한 해산군인들과 애국지사들이 국권을 되찾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1908년 의병부대를 인솔하고 전북 김제(金堤)·태인(泰仁)·임실(任實)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과 일본 공관 습격 등의 활동을 전개하던 양치언 의병장의 휘하에 들어가 함께 활동하였다. 같은 해 1월에는 양치언 의병부대와 함께 김제순사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양치언 의병장이 사망하자 대신 의병장이 되어 전북 장수(長水) 일대에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1908년 8월 3일 자택을 수색중인 일본군에게 무기 등을 압수당한 후 붙잡혔다. 같은 달 7일 광주지방재판소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