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熙冕
鄭熙冕1866. 8. 15 ~ 1945. 9. 1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일심계
- · 기삼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66년 8월 15일 전라남도 함평군(咸平郡) 나산면(羅山面) 월봉리(月奉里)에서 태어났다. 1907년 기삼연(奇參衍) 의병부대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어 일제가 외교권을 침탈하자, 1906년 봄부터 김용구(金容球)는 동지를 모아 일심계(一心契)를 조직하고 구체적인 의병 모집과 실천 방안을 논의하였다. 이때 일심계에 동참해 함께 활동을 펼쳤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 등으로 국망의 위기를 느낀 사람들이 다시 의병부대를 조직하였고, 여기에 해산군인 등이 합세하면서 보다 활발하게 의병활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호남에서는 개항 이후 일본으로의 쌀 수출과 일본인 자본가의 토지 침탈 등 일제의 경제적 침탈이 심각하여 이에 항거하는 의병들이 선도적으로 봉기하였다. 기삼연은 1907년 9월 수록산(隨錄山) 석수승암(石手僧庵)에서 조직된 호남창의맹소(湖南倡義會盟所)의 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기삼연 의병부대는 전북 고창군(高敞郡)에서 군기와 군량을 공급받은 후, 영광·부안·정읍 등지에서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같은 해 8월 의병부대에 참여한 후, 김형식(金炯植)·박용근(朴溶根)·오태윤(吳泰允)·이영화(李永華)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면서 일본군과의 전투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다가 그해 10월 수백 명의 사람들을 모아 놓고 김용구의 집을 불태우는 일본군에게 붙잡혀 광주(光州)로 이송되었다. 이 일로 1908년 유(流) 6월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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