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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海昌

鄭海昌

1885. 3. 15 ~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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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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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관련 단체

  • · 이강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85년 3월 15일생으로 출신지는 알 수 없지만, 활동 당시에는 충청북도 제천군(堤川郡)에 거주하였다. 본관은 연일(延日)이다. 1907년부터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에 들어가 참모부(參謀部)에 소속되어 참모와 중군장(中軍將)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광무황제(고종)가 강제 퇴위되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으로 인해 8월에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었다. 그러자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부대에 합류하면서 의병전쟁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당시 충북은 강원도·경기도와 함께 의병의 기세가 강했던 지역 중 하나였으며, 후반기로 갈수록 유격전을 통해 열세를 만회하면서 일본군과 투쟁하였다. 1907년 이강년 의병부대에 들어간 후, 참모부의 참모로 제천을 포함한 충북 일대에서 여러 차례 일본군과 교전하면서 전과를 올렸다. 그러다가 같은 해 10월에는 중군장으로 임명되어 항일투쟁을 이어나갔고, 의병부대 내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1908년 6월 이강년이 청풍(淸風)의 작성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붙잡혔다. 그러자 이강년 의병부대의 각 부장들은 각각 소규모 의병부대를 이끌며 여러 지역으로 산개해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의병들을 이끌고 독자적으로 충북 제천·영춘(永春)과 강원도 영월(寧越) 일대에서 유격활동을 하며 항일투쟁을 지속하였다. 특히 1909년에는 충북과 강원 일대에서 장기적인 의병투쟁을 위한 군수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일제의 강력해지는 탄압에도 불구하고 의병활동을 이어가다가, 같은 해 4월 28일 가평전투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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