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正學
鄭正學1881. 3. 3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유종여(柳琮汝) 의진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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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6) 1881년 3월 3일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북삼면(北三面) 채약동(採藥洞)에서 태어났다. 유기상(鍮器商)에 종사하였다. 유종여(柳琮汝)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과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의 체결로 한국의 외교권을 침탈한 일제는 1907년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고종)를 강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맺음으로써 군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이에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며 보다 체계적이고 위협적인 의병운동이 가능해졌다. 호남 지역에서는 의병 참여가 활발하였는데, 이는 개항 이후 일본과의 불균등한 쌀 무역과 경제적 침탈이 가속화되면서 이에 사회 경제적 불만을 느낀 평민들이 호남의병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시대적 흐름 속에서 유종여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유종여 의병부대는 1907년 11월부터 1909년 5월 사이에 수십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전북 순창군, 전남 장성·담양(潭陽)·광주(光州) 일대에서 60여 명의 규모로 활동한 의병부대이다. 1908년 10월에 활동하다가 일시 귀가하고 1909년 2월 22일경에 다시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과 대일본 항전을 벌였다. 그러나 1909년 9월 일제가 호남의병의 기세를 꺾고자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을 실시함에 따라, 같은 달 24일 조양현(趙良玄)·조경춘(趙京春) 등과 함께 고부경찰서 순사대에 붙잡혔다. 1909년 10월 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옥고를 겪다가 1910년 8월 칙령 제325호에 의해 사면을 받아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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