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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元局

鄭元局

1876 ~ 1909.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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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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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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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33세이므로 1876년생으로 추정된다. 1909년 당시 전라북도 전주군(全州郡) 구이동면(龜耳洞面) 구암리(龜岩里)에 거주하였다. 상업과 농업 등에 종사하였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정원국(鄭元國)을 썼다. 의병운동에 참가하여 1909년 전주군·임실군(任實郡)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등 의병무장투쟁 보급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1월 1일 오후 7시경 무기를 휴대한 동료 4명을 이끌고 구이동면 구암리에 거주하는 김선문(金善文)과 이진경(李鎭景)에게 ‘군량을 차출하라’고 요구해, 각각 조(租) 6석(石)을 받을 수 있는 수표(手票)를 징수하였다. 이어서 인근 마을인 신흥리(新興里)의 황화영(黃化榮)으로부터 엽전 300냥을 받을 수 있는 수표를 모집하였다. 그리고 구이동면 구암리의 이창숙(李昌淑) 집으로 이동해 숙박하고 있던 신원리(新院里) 주민 유백신(柳伯信)으로부터 의병들의 군량(軍糧)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조(租苞) 2석에 대한 수표(手票)를 징발하였고, 구이동면 와동(瓦洞)의 오자선(吳子善) 집으로 가서 추가로 엽전 30냥을 모금하였다. 다음날인 1월 2일 밤에는 임실군 상신면(上新面) 상가달리(上可達里)에 거주하는 임한명(林漢明)으로부터 엽전 150냥을 받을 수 있는 수표(手票)를 징발하였다. 이처럼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전주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09년 2월 24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교수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4월 24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해 5월 14일 대심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09년 6월 14일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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