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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永甫

鄭永甫

185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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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永甫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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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廣州)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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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김봉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동막곡(東幕谷)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54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 8월 김봉기(金奉基)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경기도 광주와 양근(楊根)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침탈해 간 일제는 1907년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강제 체결했으며, 1907년 8월 1일에는 대한제국 군대마저 해산시켰다. 이를 계기로 전국에서 다시 의병이 일어났고, 해산 군인들도 각 지역의 의병부대에 들어가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8월 김봉기는 고향인 이천(利川)에서 동료 의병을 규합하여 의병부대를 조직하였다. 이후 의병부대를 이끌고 이천·광주·양근(楊根)·지평(砥平)·여주(驪州)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08년 (음)8월 2일경 김봉기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일본군과 교전 중 김봉기 의병장이 붙잡혀 부대가 와해되었으나, 동료 4~5명과 함께 광주·양근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지속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1908년 12월 26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 5년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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