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鄭時恒

鄭時恒

1866 ~ 미상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時恒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충북 충주(忠州)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충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정봉준 의병부대
  • · 김학선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66년생으로 추정된다. 1907년부터 정봉준(鄭奉俊) 의병부대와 김학선(金學善)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군대까지 해산시켰다. 이에 소강상태에 있었던 의병항쟁은 다시 전국적인 규모로 재개되었다. 이때 충북 음성(陰城)에서 금광 노동자로 일하다가, 같은 해 (음)7월경 의병장 정봉준의 권유를 받고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1907년 8월 정시항은 충주군 노은면(老隱面)과 음성 사장(射場)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 정봉준 의병부대에서 활동을 지속하였다. 이후 강원도 원주(原州)로 이동하여 정낙인(鄭樂寅)·방인관(方仁觀)·원용진(元容振)이 이끄는 부대와 연합하였는데, 이때 의병부대의 규모는 5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그해 12월경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전투에서 패하고 의병부대가 해산되자, 충주군 신전(薪田) 여인숙에서 지내며 은신하였다. 1908년 (음)1월경 김학선 의병부대에 다시 들어간 이후, 의병장의 지휘 아래 김성구(金聖九)·손명선(孫明善) 등과 함께 충주군 노은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본군에 붙잡혔다. 1908년 7월 31일 평리원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 15년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1910년 칙령 제325호 이른바 대사령으로 사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