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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漢明

趙漢明

1893. 12. 26 ~ 1962.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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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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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楊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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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93년 12월 26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주내면(州內面) 유양리(維楊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평양(平壤)이다. 1920년 8월 박용선(朴容善)·허병률(許秉律)·이동찬(李東粲)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할 목적으로 독립운동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7월 15일 일본인 다키카와(瀧川靜江)가 가지고 있던 6연발 권총과 탄약을 양여하는 허가 청원을 용산경찰서에 제출하여 허가를 받고 매수하였다. 이때 청원서는 미리 나카지마(中島保之亟)라는 일본인이 호신용(護身用)이라고 분실 신고하여 본인 명의로 양수(讓受)를 허가받도록 해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먼 친척으로 서울 서린동(瑞麟洞)에 사는 엄홍섭(嚴弘燮)으로부터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8월 6일 먼저 조흥팔(趙興八)을 엄홍섭의 집으로 보내 그의 아우인 엄명섭(嚴明燮)을 만나 임시정부에서 운동자금을 모집하러 올 것이라는 내용을 알려주었다. 8월 7일 밤 박용선에게 구입한 권총 등을 제공하고, 광복회(光復會) 회원으로서 군자금 모집 경험이 있는 허병률을 불러내 함께 엄홍섭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해 오도록 지시하였다. 8월 9일 이동찬의 집에서 권총 등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부 명의의 애국금납입통지서(愛國金納入通知書)와 영수증을 허병률에게 제공하였다. 그리고 직접 산책을 핑계로 엄홍섭을 데리고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허병률과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어서 허병률은 엄홍섭에게 군자금으로 20,000원을 납부하도록 요구하였고, 기부금을 제공하겠다고 서명한 통지서를 받았다. 8월 16일 저녁 남대문에서 엄홍섭으로부터 군자금을 지급받기 위해 만나러 갔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21년 6월 2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강도죄, 총포화약류 취체령 위반, 정치범죄 처벌령 위반으로 징역 5년(미결구류일수 중 20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8월 5일 취하하였다. 옥고를 겪다가 1925년 1월 만기를 채우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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