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泰榮
鄭泰榮1888. 10. 13 ~ 1959. 5.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청년외교단
- · 대한민국애국부인회
- · 대한적십자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대한민국청년외교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8년 10월 13일 충청북도 중원군(中原郡, 현 충주시) 가금면(可金面) 가흥리(可興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참여 당시에는 경성부(京城府) 냉동(冷洞)에 거주하였다. 1910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중앙기독청년회(中央基督敎靑年會) 부설 영어과를 수료하였다. 1916년 12월 충북 제천(堤川)에 위치한 사립 찬명학교 교사로 교육활동에 매진하였으며, 1917년 8월 학교를 사직한 후 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세브란스병원 회계사무원으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2일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들자 종로의 보신각에서 종을 치며 독립선언을 한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로 인해 함께 활동한 고희준(高熙俊)·김영진(金永鎭) 등 20명과 함께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그해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미결구류일수 중 120일 본형 산입),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풀려난 이후 1919년 대한민국청년외교단(大韓民國靑年外交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외교론의 방략 아래 외교활동을 독립운동의 행동지침으로 표방한 가운데 청년이 주체가 되어 결성한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의 특별단원으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국내 상황 통보, 독립운동자금 모집 및 전달, 각종 인쇄물 작성 및 반포 등의 활동을 전개하면서 독립의 여론을 조성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특히 이병철(李秉徹)의 의뢰를 받아 경고문 약 300장, 외교시보 약 200장을 인쇄하였다.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은 임시정부 연통부(聯通府)의 업무를 경상도 등지에서 대신하였고, 다른 단체와도 긴밀하게 관계를 가지면서 활동한 중요 독립운동단체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19년 11월말 대한민국청년외교단 조직이 발각되면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0년 7월 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복역 후 1928년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광복 직후 경기도청 상공국 번역사로 근무하였고, 1948년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중앙본부에서 근무하였다. 1955년 1월 3·1정신선양회(精神宣揚會) 중앙총본부 지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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