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燦成
鄭燦成1886. 4. 23 ~ 1951.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86년 4월 23일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사인면(舍人面)에서 태어났다. 1919년 9월 예수교 여학교에서 윤찬복(尹燦福)·최복길(崔福吉)과 함께 예수교 신도를 규합하여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부인향촌회(婦人鄕村會)를 결성하고, 이를 통해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 및 선전 활동을 하였다. 1919년 야소교 장로회에서 활동하면서 교회 회원들로부터 두루 신임을 얻고 있었다. 야소교 장로파 간사로 활동하던 중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라는 비밀결사에 참여하였다. 부인향촌회는 같은 해 9월 평양에서 결성된 대한국민회의 여성지부 조직이었다. 대한국민회는 평양에 본부를 설치하고 교회를 중심으로 지부 조직을 세워 갔는데, 특히 평안도 일대에 지부 조직이 발달하였고 여성들의 참가도 두드러져 부인향촌회와 같은 여성만의 독립조직을 세울 수 있었다. 1919년 (음)8월에 간부인 윤찬복·최복길 등과 함께 독립을 희망하는 마음으로 임시정부를 원조할 것을 서로 협의하였다. 같은 해 (음)10월 11일경 순천군 제현면(濟賢面) 문창리(文昌里) 예수교 여학교에 모여서 비밀히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라는 큰 단체를 조직하고, 신자로부터 수십 명의 회원을 모집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의 취지에 찬동한 중견 기독교 여성 한덕균(韓德均)·심화자(金花子)·김량선(金良善)·방문식(方文植)·김건신(金健信)·김오복(金五福) 등 14명의 회원을 얻었다. 부인향촌회는 회원으로부터 회비와 기타 의연금으로 회원은 각기 4원의 회비를 납부하도록 하였고, 합계 160여 원의 돈을 모집하여 향촌회의 활동 비용으로 충당하였다. 1920년 (음)3월에는 임시정부의 여성요원 차경신(車敬信)에게 교부하여 독립운동을 위한 임시정부 군자금으로 원조하였다. 또한 회장인 윤창복·최복길과 함께 회계(會計)가 되어 임시정부의 선전을 도맡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1921년 1월 조직이 발각되면서 붙잡혔다. 같은 해 7월 2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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