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會一
鄭會一1923. 3. 12 ~ 1993. 6. 1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복군 3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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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3년 3월 12일 전라북도 완주군(完州郡) 봉동읍(鳳東邑) 제내리(提內里)에서 태어났다. 1944년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어 제3지대에서 활동하였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전시체제에 대비하기 위한 무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곧바로 군사위원회(軍事委員會)를 설치해 군사활동에 대한 종합 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1939년 11월 군사특파단(軍事特派團)을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으로 파견하여 장차 광복군을 편성하기 위한 병력모집과 선전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1940년 9월 청사를 치장(綦江)에서 충칭(重慶)으로 이전한 임시정부는 우선 광복군 총사령부를 창설하고 곧 이어 11월에 통수부(統帥府)를 설치하여 광복군 상층조직을 확립하였다. 한국광복군의 당면 목표는 병력을 확보하여 최소 3개 사단을 편성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한국광복군은 각 지역에 인원을 파견하여 중국 관내로 이동한 만주지역 독립군, 일본 점령지역과 동북지역의 한인(韓人) 장정, 일본군에 소속된 한인 사병 등을 중심으로 초모활동에 주력하게 된다. 이 가운데 제6 징모분처(徵募分處)를 기반으로 성장한 제3지대는 1942년 4월 8명의 인원으로 시작하여 1945년 6월 약 180명의 병력을 모집하는 등 큰 활약을 하였다. 광복군 제6 징모분처 소속으로 1944년 쉬저우(徐州)지구에서 병력을 모집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장이호(張利鎬)와 접촉하였다. 7월에 최창범(崔昌範)·최하진(崔夏鎭)·홍종석(洪鍾石)·유청수(劉淸水)·임상호(任尙鎬) 등과 함께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였다. 제6 징모분처가 한국광복군 제3지대로 개편된 이후에도 광복군 제3지대 소속으로 쉬저우지구에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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