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鎭豹
朱鎭豹1860. 1. 2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풍산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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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1860년 1월 29일 함경남도 풍산군(豊山郡) 안산면(安山面) 노은리(老隱里)에서 태어났다. 천도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풍산군 만세시위는 3월 10일 천도교 풍산교구의 봉훈(奉訓)인 맹시정(孟始楨)과 김병식(金炳軾)이 이인면 원포리(院浦里)에 있는 김병식의 집에서 강희준(姜熙俊)과 만나면 시작되었다. 강희준은 천도교 교주 손병희(孫秉熙)의 주도로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다는 사실과 서울의 만세시위 소식을 전하였다. 이에 김병식과 맹시정은 바로 풍산 천도교의 중심인물인 박인진(朴寅鎭)을 김병식의 집으로 초대하였다. 김병식 등은 논의를 통해 3월 14일 풍산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14일 이인면 신풍리(新豐里)에 있는 천도교 풍산교당에는 교구장 주병남(朱炳南)과 박인진·장세급(張世岌)·주두칠(朱斗七) 등 천도교 지도자와 교인 수 백 명이 참석하였다. 여기에 강한철(姜漢掇)·맹시정·주의락(朱義洛)등과 함께 하지경리(下地境里) 불암(佛岩)에서 안산면 노은리(老隱里) 방면에서 오는 천도교인들을 인솔하여 참석하였다. 200여 명의 참석자들은 모두 조선의 독립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김창선(金昌善)과 박인진의 연설을 들은 후,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 때 풍산 헌병분견소의 헌병들이 천도교당 안으로 난입하여 천도교인들을 강제로 해산시키려 하였다. 헌병들의 강제 진압 시도에 대해 천도교당에 있던 참석자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격렬하게 대항하였다. 참석자들은 이인면 신풍리에 있는 풍산 헌병분견소 앞까지 만세시위를 하면서 행진하였다. 헌병분견소 앞에 도착한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였다. 이에 헌병들은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며 시위대를 해산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헌병들의 행동에 격분한 시위대 일부는 헌병분견소 안으로 진입하였다. 분견소에 진입한 시위대는 기물을 부수고 무기를 탈취하려 하였다. 그때 헌병들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2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날 만세시위는 오후 4시경까지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강한철·김병식·맹시정·박인진·주병남·주의락·진지찬(陳志燦) 등 20여 명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7월 1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 벌금 30원을 받았다. 8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자,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1919년 10월 2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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