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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宗贊

朱宗贊

1893. 6. 17 ~ 1933.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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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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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統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통영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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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8)

관련 사건

  • · 통영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8) 1893년 6월 17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이운면(二運面) 옥포리(玉浦里)에서 태어났다. 종교는 개신교이며,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3일 통영군 이운면 옥포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통영군 이운면에서는 3월 하순부터 만세시위가 준비되었고, 그 시작은 4월 3일 오후 7시 장날이었던 아주리(鵝州里) 시장에서였다. 옥포 교회에 함께 다니는 신자들과 함께 아주리 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4월 6일 이운면 옥포리 만세시위를 계획하게 되었다. 4월 5일 이운면 옥포리 옥찬영(玉贊永)의 집에서 동지들과 함께 모임을 가졌다. 대나무를 잘라서 만세시위에 사용할 종이 깃발을 여러 개 제작하였다. 그 깃발에는 ‘대한국독립만세’라는 구호를 적어 두었다. 4월 6일 오전 11시 옥포리 중앙에 있는 망덕봉에서 큰 깃발을 흔들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옥포리 서당의 학동들에게 작은 깃발과 태극기를 휴대하도록 했으며, 옥포리 일대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면서 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오후 1시부터 수십 명의 인파와 함께 옥포리와 아주리 시장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대를 이끌고 ‘대한국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이운면 사무소로 향하였다. 이운면 사무소를 점거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오후 4시경 자진 해산하였다. 일제 군경에 의해서 이운면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1일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에서는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조선 민족으로 조선 독립을 기뻐한 행동을 보안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상고하였으나, 그해 6월 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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