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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義奎

朱義奎

1859. 4. 1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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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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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장진(長津)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장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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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2)

관련 사건

  • · 장진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2) 1859년 4월 13일 함경남도 장진군(長津郡) 상남면(上南面) 서덕리(西德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9일 장진군 신남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확산되면서, 상남면 덕실리 헌병주재소는 요시찰 인물들을 예비 검속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때 서덕리에 거주하는 김윤석(金允錫) 등과 함께 예비 검속 대상이 되었다. 덕실리 헌병주재소의 헌병보조원인 나치준(羅致俊)은 요시찰 인물의 연행을 위해 서덕리를 방문하였다. 그때 김윤석의 집에 함께 있었다. 나치준이 김윤석과 함께 주재소로 동행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다. 김윤석과 운수리의 주병찬(朱炳賛)·한국림(韓國林)은 돌아가는 나치준을 따라가서 황도일(黃道日)의 집 근처에서 구타하였다. 이에 근처 이동술(李東述)의 집으로 나치준을 연행하여 포승줄로 묶었다. 이를 계기로 김윤석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3월 19일 김윤석과 함께 상남면 운수리(雲水里)에서 200여 명이 참여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만세시위는 호응이 커서 인근 덕실리까지 확산되었다. 이후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6월 9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상해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지만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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